[시간들] 야구장 애국가가 사라지지 않는 까닭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영화 '국제시장'(2014년 개봉)에서는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가 공원에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 핏대를 올리며 다투던 중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돌아서 가슴에 손을 얹는다. 요즘 세대에겐 코미디처럼 보일 테지만 산업화 시대의 실제 풍경이었다. 대한민국을 일제히 멈춰 세운 저녁 국기하강식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에야 폐지됐다.

부부싸움 멈춰세운 태극기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을 벌이던 덕수와 영자가 국기하강식이 시작되자 다툼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민의례의 약식 절차인 '국기에 대한 맹세'는 6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1968년 충남도교육위원회 장학계장 유종선 씨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라는 문안을 만들어 지역 학교에 보급한 것이 시초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이를 전국 학교로 확대하면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익숙한 문구로 바꿨다.

▷ 진보 정권이 들어서자 국민의례를 손보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국가가 개인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군사독재 시대의 잔재라는 논리였다. 결국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이 '국기에 대한 맹세' 규정을 아예 삭제한 국기법안을 발의했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자 정부는 맹세는 그대로 두고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시대 상황을 감안해 '조국과 민족',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 최근 한 일간지가 실시한 야구팬 대상 설문조사에서 경기 전 애국가 제창 등 국민의례를 그대로 두자는 사람이 52%, 축소하자는 사람이 29%, 없애자는 사람이 19%로 나타났다고 한다. 현재 프로스포츠 종목 중 야구만 1982년 출범 때부터 국민의례를 이어오고 있는데,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중 월드시리즈에서 군악대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한 것이 시초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모든 메이저리그 경기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역대 대통령의 프로야구 시구
2017.10.25 [연합뉴스 자료사진]

▷ 영화 '국제시장'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국가가 애국의 방식까지 정해 개인에게 강요하던 시대도 끝났다. 그렇다고 야구장에서 모두가 잠시 일어나 태극기를 바라보는 것까지 독재 시대의 유물로 치부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놀이문화인 야구에서조차 국민의례를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인 것을 보면, '나'만큼 '우리'를 생각하는 한국인의 집단의식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은 모양이다. 세상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쪽으로 크게 바뀌었지만, 온갖 외세의 침략과 국난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버텨온 한민족 특유의 공동체 의식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아닌가 싶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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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운행복사랑#QWqP
    2026.09.0108:37
    좋아요 그대로 유지함이 옳을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