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3년 만에 실물 금 산다…"금값 떨어져 부담 완화"

국내 업체와 수출용 금 원화로 협의 매매…금 ETF는 이미 매입 개시

"현재 외환보유액 금 비중 작아"…신중론 고수 번복

[연합뉴스 자료사진. DB 및 재판매 금지]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실물 금(金) 매입을 재개한다. 국내에서 생산된 수출용 금을 장외에서 사들이는 전에 없던 방식을 도입한다.

한은 외자운용원은 국내 생산 금 매입의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지난달 20일 국내 금 생산업체인 LS MnM, 한국거래소(KRX), 한국예탁결제원(KSD) 등과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고 3일 밝혔다.

한은은 한국거래소의 기존 거래·결제 인프라와 예탁결제원이 준비 중인 보관 인프라를 활용해 국내 금 생산업체의 수출 예정 물량을 국제 금 시세로 사들일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LS MnM과 고려아연 등의 업체가 구리나 동,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한 금 중에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은 일부 수출 물량을, 업체 측 의뢰가 있을 때 매입 검토할 예정이다.

업체 측이 국내외 시세에 따라 거래 가능 물량과 희망 시기 등을 한은에 제시하면, 한은이 금 운용 계획과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거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두 업체는 매년 40∼45t 규모의 금을 생산하며, 그중 10%가량인 4∼5t을 수출해왔다고 한은은 전했다.

국내에서 자국 통화(원화)로 실물 금을 매입하는 이런 방식은 해외 현지에서 미 달러화로 금을 거래하던 과거 방식과 차이가 있다. 환 헤지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보관 장소를 국내에 둘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동안 한은 보유 금은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금고에 보관해왔다.

한은은 아울러 국내 금 시장의 장중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내에서 일반 매매하지 않고, 장외에서 업체 측과 가격, 수량 등을 사전 협의해 대량 매매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다만, 정확한 매입 시기와 규모 등은 정하지 않았다.

한은은 "실제 매입 시기는 금 거래 관련 제반 준비 사항, 금 생산업체의 수출 계획, 한은의 금 운용 계획 등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은은 올해 2분기 중 이미 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유가증권 형태로 처음 소량 매입했다는 사실을 이날 함께 공개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김용창 한국예탁결제원 투자지원본부장, 구본권 LS MnM 부사장, 권민수 한국은행 부총재보, 한구 한국거래소 부이사장이 지난 20일 '국내 생산 금 거래 협력체계 구축' 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은 제공]

한은이 금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한은은 올해 7월 기준 104.4t의 금을 외환보유액으로 보유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을 제외한 세계 중앙은행 중 39위 수준이다.

한은은 2011년 40t, 2012년 30t, 2013년 20t의 금을 추가로 사들인 이후 올해까지 총량을 104.4t으로 묶어왔다.

이에 따라 한은의 금 보유량 순위는 2013년 말 세계 32위에서 2018년 말 33위, 2021년 말 34위, 2022년 말 36위, 2024년 말 38위, 2025년 말 39위 등으로 계속 하락했다.

전체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3.5%에 그쳐 미국(83.1%), 독일(82.8%), 이탈리아(79.1%), 프랑스(80.5%), 일본(9.5%) 등 주요국보다 현저히 낮았다.

한은은 그동안 금 추가 매입에 신중론을 고수한 이유로 주식이나 채권보다 유동성이 낮고 변동성이 큰 점, 이자나 배당이 없고 보관 비용이 발생하는 점 등을 들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금을 사들일 때도 미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조치라며 평가절하해왔다.

이런 단점들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정들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금 보유 비중을 확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한은 설명이다.

한은의 입장 변화는 신현송 총재 취임 이후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인다.

이창헌 외자운용원 운용기획팀장은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로 (금과 같은) 안전자산 관심이 크게 증대됐다"며 "다른 나라에 비해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최근 들어 금값이 하락하면서 매입 부담이 완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생산 금 이외 다른 금 매입 채널을 닫는 것은 아니다"며 "가장 유리한 채널을 선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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