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누가 이기든 내 알 바 아니라 너무 좋아"

야구 승패 상관없이 응원·먹거리 만끽 '책없쾌' 관중들

"선수 실책도 웃어넘겨"…"스트레스 받지않고 편히 관람"

야구 신규 관람자 68% "승패·팀과 무관하게 야구장 찾아"

"야구장 자체가 '핫플레이스'이자 엔터테인먼트 공간"

6월30일 잠실 야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제 응원팀이요? 굳이 따지자면 치맥(치킨과 맥주)이나 크림새우요. 친구들이 양옆에서 응원하는 팀이 삼진 먹었다고 뒷목 잡을 때, 저는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즐기는 거죠."

대학생 심모(26) 씨는 21일 이같이 말하며 웃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꾸준히 야구장을 찾고 있지만, 정작 응원하는 팀은 없다.

프로야구가 19일 역대 최소 경기 800만 관중 기록을 세운 가운데, 응원팀 없이 야구장을 찾는 관중도 늘고 있다.

이른바 '책없쾌'(책임 없는 쾌락)를 추구하는 관중들이다.

5월21일 잠실 야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승패 스트레스서 해방…마음 편히 경기 관람"

'책없쾌'는 본래 마땅한 책임은 회피한 채 즐거움만 좇는 태도를 뜻한다.

하지만 최근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응원하는 팀의 승패에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중립 관중으로서 경기와 응원, 먹거리만 즐긴다는 유쾌한 뜻으로 통한다.

이들은 응원팀 없이 야구장의 신나는 분위기만 즐기러 가거나, 내 응원팀을 두고 일부러 이해관계가 없는 남의 팀 경기를 보러 간다. '우리 팀 승패'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키움 히어로즈 팬인 직장인 유모(30) 씨는 "지난 주말 일부러 다른 팀의 경기를 찾았다"며 "원래 응원팀 경기를 볼 땐 승패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남의 팀 경기를 보니 누가 이기든 내 알 바 아니라 마음이 너무 평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의 실책도 웃어넘기고 여유롭게 즐겼더니 야구가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였나 새삼 깨달았다"며 웃었다.

응원팀 없이 잠실, 수원, 고척 등 구장을 가리지 않고 누비는 직장인 권모(27) 씨도 '책없쾌' 관람의 매력에 푹 빠졌다.

권씨는 "친구들과 신나게 먹고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게 재밌어 재작년부터 날씨 좋은 날이면 야구장을 찾았다"며 "응원팀이 없으니 경기 결과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마음 편히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팬이 아닌 상태라 그 분위기를 맘껏 즐길 수 있어 앞으로도 응원 구단 없이 이곳저곳 다닐 것 같다"고 말했다.

'책없쾌' 관람 인증한 SNS 게시물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ju1niz' 게시물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야알못'이지만 야구장서 삼겹살에 맥주 너무 재미있어"

'책없쾌' 관중이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야구장이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즐기기 좋은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정모(26) 씨는 "특별히 응원하는 팀은 없지만, 두산 베어스 팬인 부모님을 따라 종종 야구장을 찾는다"며 "승패에 연연하지 않아도 가족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활기찬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여가 공간으로 방문하기 좋다"고 말했다.

한화 이글스의 골수팬이라는 직장인 김지성(26) 씨는 "탁 트인 야외에서 저렴한 티켓 가격과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며 "우리 팀 경기가 주는 긴장감에서 벗어나 오직 경기 외적인 요소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또 대학생 정지민(26) 씨는 "최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친구들과 함께 관람했다"며 "집에서 고척 구장이 그리 멀지 않았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간 목적이 컸다"고 말했다.

5월21일 잠실 야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야구 규칙을 잘 모르는 이른바 '야알못'에게도 야구장은 훌륭한 데이트·친목 코스다.

대학생 최모(24) 씨는 "지난달에만 친구들과 잠실구장에 세 차례 방문했다"며 "'야알못'이지만 야구장에서 삼겹살 정식에 맥주를 마시는 게 너무 재미있어 자주 찾았다"고 밝혔다.

최씨는 "응원가가 나오면 신나게 따라 부른다"며 "홈팀이든 원정팀이든 승패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이준서(26) 씨도 "응원하는 팀은 없지만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잠실 야구장을 자주 방문한다"며 "날씨 좋은 봄이나 초여름에 야외 좌석에 앉아 다양한 먹거리와 주류를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한국야구위원회(KBO) 조사에 따르면 신규 관람자의 67.7%가 "야구 경기(승패나 특정 팀)와 무관하게 야구장을 찾았다"고 답했다. 주된 방문 이유는 '응원 문화'(33.8%)와 '식음 문화'(19.9%)였다.

소셜미디어(SNS)에도 '책없쾌' 관람을 인증하는 글이 잇따른다.

누리꾼들은 응원팀이 아닌 구단의 경기와 음식 사진을 올리며 "책없쾌 하러 왔다", "오늘은 일일 팬"이라고 적는다.

'책없쾌' 관람 인증한 SNS 게시물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sss499593' 게시물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KBO 총재 어드바이저)는 "최근 야구장 자체가 성수동처럼 하나의 '핫플레이스'이자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며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아니더라도 각 팀의 응원전과 응원가, 먹거리 등 야구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문화를 소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통적인 야구 관람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낯설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며 "이러한 관람 방식의 지속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장소와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는 스포츠 분야에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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