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요약
그룹 룰라 출신 고영욱이 최근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달리기하는 근황을 공개했다가 누리꾼들의 강한 비판을 받자 이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표출했습니다. 고영욱은 달리던 중 만난 고양이 영상과 함께 "날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웬만한 인간들보다 낫다"라는 글을 남기는가 하면, 라면 사진을 올리며 "삶은 고달파졌지만 라면은 맛있다"고 적었습니다.
앞서 민소매 차림의 러닝 사진이 공개된 후 대중의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그는 "누구에게 피해 안 주고 혼자 사색하며 달렸을 뿐인데, 무인도에 가서 달려야 하나"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고영욱은 2013년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신상정보 공개 5년, 전자발찌 부착 3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친 바 있으며, 과거 자신의 범죄 보도와 관련해 "성폭행이 아닌 간음"이라며 판결에 나온 사실만 쓰고 비판하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논평
과거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던 인물이 대중과의 소통 채널에 다시 얼굴을 비추고, 연이어 자극적인 언행을 던지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네요. 본인은 그저 한적한 곳에서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하고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공유했을 뿐이라고 항변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중이 느끼는 불쾌감과 냉담한 시선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본인만 모르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씁쓸하네요.
가장 먼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누리꾼들의 비판을 향해 던진 "웬만한 인간들보다 낫다"라거나 "무인도에 가서 달려야 하나" 같은 발언입니다. 이 말속에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의 무게에 대한 깊은 반성이나 자숙의 태도보다는, 자신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그저 '억울한 억까'나 '과도한 마녀사냥'에 불과하다는 피해의의식이 짙게 깔려있네요. 본인이 대중에게 준 충격과 상처, 그리고 특히 피해자가 평생 안고 살아갈 고통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반추해 보았다면, 이런 식의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쉽게 내놓을 수는 없었을 거라 봅니다.
게다가 과거 판결 내용을 두고 "성폭행이 아닌 간음이다, 법원 판결에 나온 사실만 쓰고 비판하라"라며 기사 표현에 날을 세우던 모습 역시 떠오르는데요. 성폭행이냐 간음이냐 하는 법률적 용어의 차이를 떠나서, 대상이 미성년자였다는 그 엄중한 팩트 자체만으로도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법적인 처벌 형기를 다 채웠고 전자발찌 부착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과거의 범죄 사실이나 대중이 느꼈던 도덕적 실망감까지 마법처럼 무효로 돌아가는 것은 절대 아니지요. 법적 형벌은 끝났을지 몰라도,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도덕적 단죄와 사회적 평가의 기간은 본인이 평생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합니다.
달리기나 운동 그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국민이든 개인적인 공간이나 공공장소에서 운동하고 사색할 자유는 당연히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굳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대중의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오자 마치 자신이 아무 죄 없이 거리에 쫓겨난 피해자인 양 "인간들보다 낫다"라며 대중과 기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잊힐 권리를 주장하거나 진정으로 조용히 자숙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일상을 대중에게 노출하며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는 행동부터 멈추는 게 상식적인 순서가 아닐까요.
결국 대중이 분노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핵심은 그의 러닝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근황을 노출하는 방식과 그 뒤에 숨어있는 오만한 태도 때문입니다. 징역형을 살고 나왔으니 이제 모든 게 리셋되었다는 식의 태도, 그리고 조금의 비판도 참지 못하고 대중을 비꼬는 듯한 반응은 도리어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결과만 낳고 있습니다.
세상에 무인도로 가서 달려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과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대중에게 큰 상처를 남겼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불쾌함이나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한 법이지요.
억울함을 토로하고 남 탓을 하기 전에, 본인이 세상에 내놓았던 행동들의 무게를 다시 한번 숙고해 보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반성은 화려한 소통이나 억울함의 토로가 아니라, 조용하고 납작하게 엎드려 스스로를 돌아보는 침묵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