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자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도리어 세상에서 가장 무력하고 순진한 아들의 목을 죄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온 황아무개씨는 볼펜으로 수차례 고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이들의’라고 적은 부분은 말로 바뀌며 자연스레 ‘아들의’로 읽혔다. 황씨의 발달장애인 아들은 최근 아이스크림 하나를 훔쳐 먹었다가 ‘특수절도’ 혐의로 송치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1일 오전 경찰청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가 ‘발달장애인 대상 공권력 남용 규탄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장맛비 속에 비옷을 입은 발달장애인 부모 등 회원 약 300명(주최 쪽 추산)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수절도 혐의를 적용한 수사기관 판단이 “공권력 남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황씨 아들은 지난 6월10일 다른 발달장애인 친구와 1500원짜리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경찰은 2명 이상이 합동해 절도를 저질렀다며 두 사람을 ‘특수절도’ 혐의로 송치했다. 특수절도는 벌금형 없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만 처벌 형량으로 두고 있다. 황씨는 “피의자는 중증장애인으로 초범이며 피해 금액이 소액일 뿐 아니라 이를 전액 변상하고 합의까지 마쳤다”면서 “이러한 정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경찰이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한 것은 가혹하며 억울한 처사”라고 호소했다. 검찰은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참작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 처분은 전과가 남지 않지만 수사경력자료에 남아 재범 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의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수사 내용에 부모들은 분노했다. 김남연 부모연대 수석부회장은 “공모란 건 대화가 돼야 공모인데, 두 발장애인 중 한 명은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 분”이라며 “경찰은 공모의 의미를 다시 배우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적능력이 두 돌 수준인 28살 아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여기 모든 부모님들 자식 중에 안 잡혀갈 자신 있는 분 계시면 손을 들어보라”고도 했다.
수사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법적 권리 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전담 수사관을 통해 조사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당시 발달장애인 한 명은 전담 수사관이 아닌 일반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500원이라는 소액에도 중범죄에 해당하는 ‘특수절도’로 분류되는 바람에 훈방 등이 가능한 ‘경미범죄심사위원회’도 거치지 못 했다. 진술조력인제도 또한 범죄 피해자인 장애인에 국한돼 피의자인 이들은 지원받지 못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이 사건은 결코 우연한 예외가 아니”라며 “지금도 같은 차별 상담이 반복해서 접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전면 조사해 그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부모연대는 이날 항의의 뜻으로 경찰청 방향을 향해 아이스크림을 던졌다. 이들은 △사건 책임자 엄중 문책 및 공식 사과 △경미범죄심사위원회 대상 조건 대폭 완화 △전 경찰관 대상 발달장애인 이해 대면 교육 의무화 △전담 사법경찰관 제도 실질화 등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경찰청에 제출했다.
박찬희 기자 ch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