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돌진' 열차에 669명 사상…"늦으면 망신" 압박에 초보 기관사 탈선[뉴스속오늘]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5년 4월25일 일본 후쿠치야마선 열차 사고 현장. /AFP=News121년 전인 2005년 4월25일,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로 향하던 JR서일본철도 후쿠치야마선 열차가 탈선하면서 107명이 숨지고 승객 562명이 부상당했다. 애초 밝혀진 사고 원인은 커브 구간에서 과속한 초보 기관사의 운전 미숙이었다.

그러나 사고 2년여 만에 나온 일본 정부의 조사 보고서에는 무리한 운행 시간표와 정시 운행만 강조하는 관행, 최신 안전장치 도입 지연, 운행 지연이나 사고를 기관사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며 반성문을 작성하게 하는 등 JR서일본 전체의 후진적인 조직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버런' 공포에 질린 초보 기관사…급커브서 속력 내다 탈선

사고 열차를 운전한 A씨(당시 23세)는 경력이 1년이 채 되지 않은 초보 기관사였다. 사고 당일 출근 시간대를 맡았던 A씨는 과속과 급제동을 반복하다 승강장을 70여m 지나치는 '오버런' 실수를 범했다. 이 때문에 도착 시각이 1분20초쯤 지연되자 상부 질책을 우려한 A씨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A씨는 제한 속도 시속 70㎞인 급커브 구간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시속 125㎞까지 속도를 높이던 그는 뒤늦게 브레이크를 가동했으나, 열차는 이미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선로 바깥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결국 선로를 벗어난 열차는 시속 116㎞ 속도로 약 5m 거리 맨션아파트를 들이받았다.

열차 7량 중 5량이 탈선한 가운데 아파트와 직접 부딪힌 맨 앞 2량의 피해가 컸다. 1층 주차장으로 돌진한 1호차는 건물 깊숙이 처박혀 완파됐고, 2호차는 잭나이프 현상 탓에 옆면이 건물 벽에 부딪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잭나이프 현상은 열차 충돌 시 관성에 의해 뒤 객차가 V자 형태로 꺾이는 걸 말한다. 희생자 107명 중 99명이 1·2호차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4월25일 후쿠치야마선 열차 사고 당시 1·2호차의 잭나이프 현상을 재연한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요미우리TV뉴스' 갈무리 기관사 A씨도 현장에서 숨졌다. 살아남은 열차 차장은 주변 열차에 '비상 정지' 신호를 보내려 했으나 사고 충격으로 전력 공급 장치가 끊긴 상태였다. 곡선 선로에서 사고가 난 탓에 근접하지 않고는 육안으로 사고를 확인할 수도 없었던 상황, 반대편 선로엔 이미 특급열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때 아파트 건너편에서 사고를 목격한 여성이 나섰다. 이 여성은 철도 건널목의 비상 정지버튼을 눌렀다. 건널목에서 비상 상황을 알리는 불빛이 작동하자 특급열차 기관사는 비상 제동을 걸었고, 사고 지점 100m 앞에 멈춰 섰다. 이 여성은 이후 2차 참사를 막은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 포장을 받았다.

JR서일본 "기관사 개인 실수" vs 조사위 "조직문화가 문제"

후쿠치야마선을 운영하는 서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이하 JR서일본)는 사고 책임을 기관사 A씨 탓으로 돌렸다. 사고 직전 역에서 오버런 실수를 범해 징계 처분받을 것을 우려한 A씨가 차장과 실수를 축소하려는 내용의 무선 교신을 주고받는 데 정신이 팔려 뒤늦게 제동하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그러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배경에 오버런 등 과오를 범한 기관사에 대한 징벌성 일근 교육, 타사와의 경쟁과 수익 중심의 열차 운행 일정 등 효율만을 중시해 온 JR서일본의 고압적인 조직문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1987년 옛 국철이 민영화되면서 적자 노선을 떠안게 된 JR서일본은 영업 실적을 위해 '출근 시간대 2분에 1대'라는 살인적인 열차 시간표를 편성했다. JR서일본은 빠른 속도와 정확한 도착 시각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이를 지키기 위해 기관사들에게 막대한 압박감과 책임감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2005년 4월25일 충돌 사고 당시 일본 후쿠치야마선 열차 내부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요미우리TV뉴스' 갈무리 JR서일본은 실수한 기관사에게 징벌적 재교육, 일명 '일근 교육'을 일삼았다. 이 재교육의 목적은 사실상 망신 주기였다. 근무조에서 배제된 기관사는 면담에서 상사에게 온갖 모욕·비하 발언을 들어야 했고 승객들 앞에서 선로에 묻은 조류 배설물을 닦아내거나 막대한 분량의 사규를 깜지에 옮겨 써야 했다.

A씨 역시 입사 초기 일근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근 교육이 두려웠던 A씨가 사고 당일 도착 시각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가속을 감행했고 탈선 위기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지연 시간 회복에 미련을 놓지 못해 제동 타이밍을 놓치면서 결국 참사로 이어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JR서일본이 자동열차정지장치(ATS)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고 구간엔 열차가 제한 속도를 초과할 경우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도록 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었으나, ATS 중 가장 오래된 구형이어서 열차를 세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효율→안전' 경영기조 바꿨다…운행시간 조정·신입 케어 시스템

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 사고 이후 아파트 일부가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사진=유튜브 채널 '요미우리TV뉴스' 갈무리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고 날짜를 따 '4.25 네트워크'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이들은 사고 4년여 만인 2009년 12월 JR서일본과 함께 '과제검토회'라는 이름의 공동조사 기구를 도입해 사고 원인을 분석해 나갔다.

유족들은 JR서일본의 안전관리 체제에 대한 제3자 평가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이 법령 및 안전방침 준수 여부 등 평가를 통해 JR서일본 내부 감사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검증하기로 했다.

사고 이후 JR서일본은 '효율' 중심이었던 경영방침을 '안전' 중심으로 바꿨다. 사고 노선뿐 아니라 모든 노선의 열차 운행 시간을 조정해 기관사들이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고, 신입 기관사의 경우 입사 3·6개월, 1·2년 등 간격으로 업무 역량과 심리적 불안요소 등을 체크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열차가 충돌한 아파트는 철거됐지만 일부는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JR서일본은 매년 사고 시각에 맞춰 이곳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식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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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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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llymom#p0tK
    2026.04.2511:28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이라는 책의 모티브가 된 사고였나보네요ㅜㅜ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사고네요ㅜㅜ
    • KRZ899F#atiU
      2026.04.2520:07
      해박 하시네요. 그런책이 있는줄 몰랐네요. 어쨌든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론 세계 어디서든 이런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 천사맘#sEr8
      2026.04.2520:36
      전쟁땜에 매일불안한데 이딴제목걸고 기사내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