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미식 여행
홍콩 상징하는 음식 딤섬
종류만도 수천가지 넘어
닭고기·비둘기요리 인기
전통 보양식 뱀탕도 별미

직장인 성아무개(33)씨는 지난해 1월께 여자친구와 홍콩을 여행했다. 올해도 2박3일 짧게라도 홍콩에 갈 생각이다. 그는 홍콩에 ‘먹으러’ 간다. “홍콩에서 맛본 딤섬이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딤섬은 이런 거구나’ 하고 제대로 알게 됐죠.” ‘집돌이’인 그에게도 홍콩 맛 여행은 직장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탈출구다. 홍콩은 성씨 같은 식도락가들의 성지다. 저렴한 완탕면부터 달콤한 에그타르트와 전통의 보양식 뱀탕까지 산해진미가 넘친다. 여기에 세계 각국에서 이주한 맛까지 합치면 도시 전체가 맛의 ‘멜팅포트’(용광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6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의 1위(더 체어맨)와 2위(윙)를 배출한 도시다.
면적이 1110여㎢로 한국의 약 1%밖에 안 되지만 새벽까지 찌고 굽고 튀기는 주방의 열기만은 한반도를 뛰어넘는다. 영원히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먹고 또 먹어도 먹어야 할 게 생기는 도시다. 지난달 홍콩인들이 ‘엄지 척’ 하는 노포를 둘러봤다. 노포는 미식의 기초다. 도시는 노포를 통해 맛의 정수를 드러낸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란 뜻의 한자 ‘점심’(點心)의 광둥어 발음 ‘딤섬’은 홍콩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청나라 황제 문종 함풍제(1831~1861) 때 광둥 지역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광둥 사람들은 일어나자마자 찻집에 가 종업원이 끌고 온 대나무 수레 안에 있는 딤섬을 골라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이른 아침 가벼운 한 끼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퍼졌다. 이른바 ‘얌차’ 문화다. 차를 마시면서 딤섬을 먹는 식문화다.

딤섬을 만두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맛, 모양, 종류, 재료가 다양하다. 사오마이(돼지고기, 새우 등을 다져 피에 올린 후 꽃 모양으로 빚은 것), 하가우(샤자오·밀과 타피오카 전분 반죽 피에 양념한 새우를 넣어 찐 것. 찌면 반투명해지는 딤섬), 샤오룽바오(피 안에 돼지고기와 육수가 들어간 것), 차사오바오(양념해 구운 돼지고기를 빵에 넣은 것) 등이 대표 딤섬으로 꼽힌다. 종류가 수천가지 넘는다고 말하는 중식 연구자도 많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의 저자 신디킴과 임선영씨는 바오(피가 두꺼운 빵), 자오(반달 모양), 가오(떡 모양), 펀(전병 모양), 쑤(과자와 유사한 것), 퇀(앙금 든 것) 등이 기본이라고 책에 적었다. 딤섬은 작을수록 인기다. 차를 마시면서 많은 딤섬을 맛봐야 하기 때문이다.


‘포럼 레스토랑’(Forum Restaurant, 255-257 Gloucester Rd, Causeway Bay)은 1977년에 문을 연 노포다. 2023년 8월께 작고한 홍콩 요리계의 거장 영쿤얏이 연 광둥식 레스토랑이다. 그는 ‘전복의 왕’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특기인 ‘조림 전복’이 당시 홍콩 미식계를 평정했기 때문이다. 홍콩 광둥식의 기준을 세운 요리사로 평가받는다. 포럼 음식의 대부분은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중에서 딤섬은 ‘홍콩 최고’다. 규모 있는 딤섬 파트가 따로 있고, 딤섬만 담당하는 총괄셰프도 있다. 오스카 람이 진두지휘한다.
지난달 24일 홍콩 요리학원 ‘쿠킹 센터 바이 타운가스’(Cooking Centre by Towngas)에서 오스카 람은 하가우와 사오마이를 시연하며 말했다. “재료가 좋고 신선해도 싸는 기술을 잘 구사하지 못하면 내용물이 새고 맛이 떨어집니다.” 그가 빚은 하가우에는 다랑논처럼 규칙적인 줄이 생겼다. 주름의 균일함은 셰프 실력을 증명하는 인장이다. 손가락 2개보다 작은 크기의 하가우 1개에 주름은 10개가 넘는다. “10~13개가 적당한데 15개도 만듭니다.” 하가우 주름을 잡는 기술은 난도가 높다. 그는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 “사오마이는 아이디어가 좋은 딤섬인데 예뻐서 더 먹고 싶어진다”고 했다.


다음날 낮 12시께 포럼에 들어서자 영쿤얏의 사진과 동상이 보였다. 사진 속 그는 장난기가 넘쳤다. 반면, 동상은 근엄했다. 그의 음식엔 유쾌함과 장엄함이 동시에 담긴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탄 상을 전시한 탁자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이날 맛본 딤섬은 세가지. 게알을 올린 사오마이, 각종 찐 채소가 들어간 우리네 편수 모양의 딤섬, 새우 등을 넣은 하가우였다. 심호흡하고 사오마이를 입안에 넣었다. 오렌지색 게알이 터졌다. 뭉글뭉글한 피와 쫀득한 새우 맛이 혀와 놀더니 게알을 품었다. 식도가 환호했다. 1933년에 문을 열어 올해 93년 된 ‘룩유 티하우스’(Luk Yu Teahouse, 24-16 Stanley St. Central)도 홍콩인들이 이른 아침에 자주 찾는 딤섬집이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사오마이가 유명하다.
요즘 국내에선 쓰촨식 매운맛 닭고기 요리인 ‘라쯔지’가 인기다. 이름의 ‘지’는 닭고기를 뜻한다. 홍콩엔 닭고기 요리가 많다. 무릇 홍콩만 그렇겠냐만 다양한 변주가 그 수를 늘려왔다. ‘지’는 행운을 의미하는 한자 ‘길’(吉)과 중국어 발음이 같다. 닭고기 요리가 유난히 많은 이유가 아닐까. ‘타이핑쿤 레스토랑’(Tai Ping Koon Restaurant)엔 한번 맛보면 평생 잊히지 않는 닭고기 요리가 있다.

1860년에 문 연 노포 중의 노포다. 창립자 추이 로코(Chui Lo-Ko)는 본래 본토 광저우에서 무역을 병행하는 요리사였다. 전공은 서양요리. 그는 자신의 견문을 십분 발휘해 서양식을 접목했다. 광저우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인 타이핑쿤은 정작 고향보다 홍콩에서 꽃피었다. 현재 중국 본토엔 지점이 없다. 홍콩엔 1938년에 문을 열었다. 쑨원, 장제스, 저우룬파(주윤발), 호찌민 등 세계적인 인물들이 다녀가며 명성이 올라갔다. 현재 센트럴, 코즈웨이베이 등 4곳에 지점이 있다. 창립자 후손들이 운영한다.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타이핑쿤(6 Pak Sha Rd, Causeway Bay)을 찾았다. 벽엔 흑백사진이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직원들은 여유가 넘쳤다. 명성이 자자한 ‘스위스 소스로 조리한 치킨윙’은 입을 다물게 했다. 극강의 보드랍고 쫀득하며 단 동시에 짠맛은 홍콩이 미식의 천국임을 만방에 알렸다. 어떤 말로도 이 위대한 맛을 표현할 순 없었다. 간장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향신료 등을 섞어 개발한 이 집 비법 소스로 도포한 닭고기 요리였다. 혀가 아니라 뇌에 각인된, 잊히지 않는 맛이다.


‘드래곤스 덴’(Dragons’ Den, Shop S02, 2F, Tin Ma Court Shopping Centre, 55 Chuk Yuen Road, Wong Tai Sin, Kowloon)은 ‘2026 미쉐린 가이드’의 빕 구르망(가성비 좋은 레스토랑)에 오른 데다. 이곳 닭고기 요리도 일품이다. 배나무로 훈제해 조리한 비둘기 요리는 명성이 높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의 진수를 보여준다.
노포는 낡은 식탁, 오래된 달력, 누런 차림표 등 세월을 드러내는 기물과 소품으로도 맛 자랑을 한다. ‘록하우푹’(Lok Hau Fook, 1 Hau Wong Rd, Kowloon City)은 1954년에 개업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이다. 휘갈긴 한자는 고풍스러운 액자 안에 박제돼 있었다. 색 바랜 낡은 벽지는 정겨웠다. 이런 풍경 때문에 영화 촬영지로 종종 애용됐다. 이 노포가 있는 지역은 구룡시티다. 영화 ‘아비정전’ 등을 촬영했던 홍콩 최대 슬럼가 구룡성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온통 ‘옛것’투성이인 이곳 음식은 촌스럽다. 하지만 근사한 촌티다. 광둥성 동부 지역 음식인 차오저우 요리가 주메뉴다. 전통의 조리 기술을 버리지 않고 옛 방식을 고수한다. 차우저우 요리는 지역 소수민족 음식을 중심축으로 해산물 등 재료의 특징을 살려내는 음식이다.


간장기름에 지진 장어구이, 가리비볶음, 바삭한 팬케이크처럼 조리한 굴전, 거위 발로 우린 육수에 익힌 전복, 굴이 들어간 다진고기죽, 연꽃씨를 곁들인 달걀흰자볶음밥, 설탕 입힌 토란튀김, 닭발이나 돼지 위장 요리 등 형언할 수 없는 특이한 음식이 즐비하다.
록하우푹이 있는 지역엔 상어 지느러미, 홍콩 전통 간식, 정육점, 열대 과일 등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다. 재래시장이나 이들 가게 투어도 할 만하다. 한약방을 카페로 개조한 ‘타이우탕’(Tai Wo Tang)엔 차도 있지만 길거리 간식인 ‘가이단자이’도 먹을 수 있다. 우리네 호두과자 같은 거다. 호두과자 여러개를 붙여놓은 모양이다. 록하우푹과 분위기와 메뉴가 유사한 ‘서웡펀’(Ser Wong Fun, 30 Cochrane St, Central)도 1895년에 중국에서 개업했다가 1940년대 지금의 자리로 이주한 식당이다. 독특한 건, 뱀탕이 있다는 점이다. 선입견은 버리자. 그저 우리네 염소탕처럼 보양식이다.



한때 홍콩 여행객 손엔 ‘제니 베이커리’의 쿠키가 가득했다. 요즘 대세는 ‘베이크하우스’다. 신선한 달걀 맛이 진하게 풍기는 에그타르트를 비롯해 홍콩 색을 입힌 디저트를 파는 데다. ‘기와베이커리’의 과자도 인기다.
홍콩/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참고 서적 ‘중국요리 백과사전’
홍콩 미식의 힘은 손님에게서 나온다
홍콩은 ‘향기 나는 항구’라는 뜻이다. 명나라 때 향나무 무역의 중심지였다. 홍콩이 미식의 천국이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842년 난징조약 체결 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은 서양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홍콩 미식의 기본인 광둥식과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 광둥식은 8대 중국요리 중 으뜸으로 친다. 네발 달린 것이라면 책상 빼고 다 요리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식재료에 제한이 없다. 해산물, 과일, 채소 같은 평범한 재료부터 뱀, 상어 지느러미, 고기 내장, 비둘기나 거위 등 별난 먹거리까지 조리 대상이 된다. 광둥식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게 기본이다. 간이 세지 않다. 매우 짜거나 맵거나 시거나 달지 않다. 흔히 중식은 강한 불맛이라고 하는데, 홍콩은 아니다. 맛의 조화가 불맛을 대신한다.
거주지의 규모가 작아 외식이 발달했다. 작은 집엔 제대로 된 주방 시설이 거의 없다. 홍콩 미식 발달엔 소비자의 역할이 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까다로운 미식가인 홍콩인들에게 합격점을 못 받은 식당은 생존할 수 없다. 엄격한 소비자가 식당의 수준을 높였다는 결론이다. 홍콩 미식의 힘은 요리사가 아니라 손님한테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홍콩인들이 ‘최애’하는 음식으로 닭발이 있다. 맵지 않다. 달고 매우 부드럽다. 그만큼 홍콩인들에겐 맛의 제한이나 경계가 없다.
무역의 중심이란 홍콩의 지리적 특성상 전세계 음식이 앞다퉈 입국했다. 이들 음식이 뿌리를 내리며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풍부한 식재료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축적된 부도 파인다이닝(고급 정찬) 레스토랑까지 정착하도록 했다. 금융의 허브 홍콩의 장점이다. 여전히 홍콩 미식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월 홍콩 관광청이 공개한 ‘테이스트 홍콩’(tastehk.discoverhongkong.com)은 홍콩 미식 여행 참고서다. 홍콩 중화요리협회와 50여명의 홍콩 셰프들이 뭉쳐 만들었다. 고급 식당부터 저렴한 가게까지 250여곳이 올랐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