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

파도손은 ‘마음이 파도칠 때 서로 잡는 손’이라는 뜻이다.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은 정신장애 당사자들끼리 서로의 마음이 파도칠 때 함께 손잡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단체다. 2013년 설립 이후 이 단체를 이끌어온 이정하 대표(55) 역시 당사자다. 2000년부터 조현병으로 12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격리·강박 등 온갖 험한 일을 겪었다. 그가 가장 강조해온 것은 급성기, 즉 지금 당장 마음에 거센 파도가 밀려와 위기에 처한 환자의 치료환경 개혁이었다. 한데 요즘 암흑기가 찾아온 듯한 위기감을 느낀다.
2024년 12월과 2025년 10월 파도손에서 함께 일하던 30대 여성 동료 두명이 잇따라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파도손에서 정부 위탁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장애 당사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동료지원가’ 역할을 맡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정작 자신이 급성기에 처했을 때 구조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이 대표와 파도손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400여명의 회원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병원 문턱도 못 넘어보고 하늘나라로 간 꽃다운 나이의 동료들이 너무나 그리워요. 두 사람의 죽음은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한국 정신건강시스템의 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최근엔 한겨레 보도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직권조사로 드러난 울산 반구대병원의 인권침해 실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5년간 중증 지적장애인 4명 등 5명이 사망하고 96일간 환자를 격리한 이 병원은 수용소 같았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인권위 주최로 열린 ‘2026 정신의료기관 시설·환경 실태조사 토론회'에 참여한 이 대표는 “당사자들이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누군가는 회복을 얻고 누군가는 영구적 트라우마를 얻는 현실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구조적 불평등이다. 이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이정하 대표와 전화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세상을 떠난 동료지원가 2명은 각각 조울증과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 대표는 “둘 다 환청에 괴로워했다. 바로 응급실로 데려가 약을 먹이고 잠을 재웠으면 살릴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그냥 돌아갔고, 병상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위험군 정신장애인이 급성기에 처하면 이들을 안전하게 병원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경찰과 소방, 위기개입팀이 한팀이 되어 급성기 당사자를 급성기 집중치료기능을 하는 공공병상으로 바로 연결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선 급성기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면 사설 응급이송단이 먼저 출동하기 일쑤다. 급성기 전문 병상도 없고, 전문 인력이나 치료환경도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의 정신병원으로 강제입원된 당사자들은 ‘치료’보다 ‘제압’을 먼저 경험한다. 고문에 가까운 격리·강박을 당하는 급성기 당사자가 이런 병원에서 회복은커녕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물론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한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6~2030)을 보면, 급성기 환자의 집중치료 가능 병원 지정·운영과 병상 확충, 수가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급성기 환자 시스템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급성기 병상 부족과 현 행정입원 지정병원 평가 및 재지정”이라고 했다. 가령 격리·강박 사망사고가 났던 서울의 해상병원이나 춘천예현병원 같은 경우 행정입원 지정병원으로 적합한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며 “부산 다움병원이나 광주 성요한병원 등 모범적 병원에 공공병상을 운영하도록 지정하는 등의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급성기환자가 급성병상이 없는 민간 사립정신병원으로 이송되지 않도록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정신건강정책국 규모로는 이 분야의 심화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때 공약으로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이야기했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의 정신건강 정책수립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실질적 변화를 이끌 정신건강 개혁안을 짜야 합니다.” 그는 한국의 자살률이 2003년 이후 20년 넘게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라는 점을 지적했다. “자살률이 줄어들려면 이 분야가 핵심입니다. 정신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자살 고위험군이에요. 너무나 긴 시간 이 분야를 방치해 왔잖아요. 정말 사람이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해요.”
마지막으로는 일자리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사자에게는 일하는 것이 회복이면서 자립이기에 일자리를 살려야 한다고 했다. 그 역시 10년 넘게 무급으로 파도손을 운영하며 중증 당사자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왔다. “이 분야는 동료지원인 활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사자가 주도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해 검증된 동료지원 주간 쉼터를 확대하고, 이러한 동료네트워크가 지역사회 곳곳으로 확장될 때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희 같은 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세요.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