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서 있게 운영하면 될 텐데 굳이 없애는 이유를 모르겠네. 이제 노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이상열씨(81)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5년 전부터 탑골공원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제는 할일이 없어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윤광수씨(73)도 "심심하면 탑골공원에 들러 장기를 두고 가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 사라져 허전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돈내기하다 싸우거나 술 취해 소동을 부리는 일은 줄어 조용해지긴 했지만, 애초에 그렇게 잦은 일도 아니었다"라고 했다.
이날 오전 탑골공원 팔각정에는 노인 약 30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잠을 청했다. 이들은 공원 인근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려 찾아온 노인들이다. 식사 전후로 장기와 바둑을 뒀는데, 이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
싹 바뀐 탑골공원, 장기판 자취 감췄다… "음주·시비 신고 절반 줄어"
━
![]()
종로구청과 종로경찰서는 지난달 31일부터 탑골공원 안팎에서 오락 행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3·1운동의 본거지인 탑골공원의 질서를 바로잡고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공원은 관리가 한층 강화된 분위기였다. '바둑·장기 등 오락행위와 흡연, 음주를 금지한다'라는 안내문이 붙었고, 북문 주변에는 장기를 두던 자리가 사라진 채 빨간색 콘 여러 개가 길게 늘어섰다. 정문에도 '보행 개선 사업' 공사가 진행되며 장기판도 자취를 감췄다.
종로2가지구대 관계자는 "조치 시행 전까지만 해도 음주 및 시비 신고가 하루에 수십번씩 접수됐다. 하지만 이젠 관련 신고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 효과를 본 것 같다"라고 했다.
인근 상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밥집 점주 이모씨(50대)는 "밤만 되면 공원 앞이 장기판으로 꽉 차 오가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고성이 오가고, 술까지 곁들이면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지금은 깔끔해져 장사하기도 훨씬 낫다"라고 말했다.
20대 남성 홍길민씨도 "지난달 밤 친구들과 종로3가 포장마차 거리에 갔다가 탑골공원에 모여 장기 두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었다. 그 뒤로는 다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훨씬 나아졌다"라고 말했다.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 중에서도 금지 조치에 환영하는 이도 있었다. 최형철씨(75)는 "노숙에 술판, 오락까지 벌어지다 보니 함께 이용하는 입장에서도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 많았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일도 잦았던 만큼, 차라리 시에서 관리되는 공간이나 바둑 기원에서 두는 게 더 낫지 않겠냐"라고 했다.
━
종묘광장공원·노인복지센터로 넘어간 노인들
━
![]()
탑골공원 오락 금지령에 노인들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나섰다. 약 700m 떨어진 종묘광장공원이 대표적이다. 60명이 넘는 노인들이 이곳에서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탑골공원에서 넘어온 사람도 있었다.
고봉순씨(89)는 "탑골공원에서 막히니 종묘광장공원으로 옮겨올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그쪽에서 함께 넘어온 사람들도 많다"라고 했다. 이어 "만족하며 이용 중이지만, 여기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앞이라 또 금지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분관 2층에 있는 바둑 장기실에도 발길이 늘었다. 70대 노인 김모씨는 "비나 눈이 오면 바둑을 둘 수 없었는데, 이곳에선 그런 걱정이 없다. 더울 땐 에어컨도 틀어주니 훨씬 쾌적하다"라고 말했다.
센터 관계자는 "60세 이상 서울시민이면 등록 후 이용할 수 있다. 탑골공원 금지 조치 이후 등록 문의가 예전보다 늘었다"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