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돌보며 노년을 배워간다 [6411의 목소리]

데이케어센터에서 필자가 어르신들께 인지 프로그램을 설명해드리고 있다. 전혜진 제공

전혜진 | 요양보호사

나는 주야간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 내가 ‘데이케어센터’에 관해 아는 것은 어르신들이 낮 동안 머무는 곳이라는 것, 흔히 ‘노치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 정도였다. 어떤 분들이 오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 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나는 각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아버지를 잘 돌보고 싶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격증을 손에 쥐기도 전에 아버지는 허망하게 내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는 이곳에 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실 때 부축하고, 식사하실 때 곁에서 살피고, 이동하실 때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드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해드리고, 송영차량에 탈 시간이 되면 빠뜨린 것은 없는지 챙기고…. 이런 것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의 어르신들은 하루하루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었다. 걷는 힘과 듣는 힘, 기억을 잃고, 때로는 자기 생각을 말로 꺼내는 힘마저 잃어갔다. 그런데도 ‘나’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잃은 사람은 없었다. 그제야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곳에도 아침이 오고 하루가 시작된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도착하면 날짜를 함께 읽고 출석을 부른다. 스트레칭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 옛날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한주 동안 있었던 일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나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시를 쓰기도 하고, 노래를 만들어 함께 율동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그런 작은 일들이 모여 하루가 된다.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웃고, 그림을 그리고,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는 것, 그리고 내일 다시 올 곳이 있다는 것. 나는 이곳에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워갔다.

노래 교실 시간이었다. 한 어르신이 노래를 부르셨다. 뇌출혈 이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분이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무슨 노래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어르신은 최선을 다했고 한음절 한음절 끝까지 노래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노래인지도 모르겠다고. 그 생각은 얼마 뒤 다른 장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르신은 그림을 그리고 나면 꼭 종이 아래 빈 곳에 날짜와 요일, 자기 이름을 한자 한자 힘을 주어 꾹꾹 눌러썼다. 기억도, 말도, 몸의 기능도 하나씩 희미해져 가는데 자기 이름만큼은 놓지 않고 있었다. 나는 종이 위에 적힌 그 이름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아버지 무릎에 누워 까무룩 잠들던 어느 한여름. 땀에 젖은 내 머리카락을 쓸어주시던 아버지의 손.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에게 받은 것보다 해드린 것이 적다. 조금 더 자주 손을 잡아드릴걸. 조금 더 오래 이야기를 들어드릴걸.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이 같은 이야기를 또 하셔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들으려고 한다.

물론 이 일이 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몸이 많이 지친다. 하루가 끝나면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마음 한구석에 온기가 남아 있다. 어쩌면 돌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사람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도록 곁에 있는 것.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노년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서야 시작된 공부다. 그 공부를 하며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면서 자신도 돌봄 받고 있다는 것을. 이곳은 어르신들이 하루를 살아내는 곳이고, 나 또한 그들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가끔 아버지를 만난다.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마다, 식사를 챙겨드릴 때마다, 서툰 노래를 끝까지 들어드릴 때마다, 종이 아래 자기 이름을 꾹꾹 눌러쓰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아버지에게 미처 다하지 못했던 마음이 조용히 따라온다. 잘 지내고 계시죠, 아버지. 나는 오늘도 여기서 누군가의 하루를 돌봅니다.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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