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험 자산’ 지위 내려놓은 프랑스 국채

2026년 11월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대가 생활비 상승 및 공공서비스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국채는 국가 내에서 최상위 신용도를 지닌 ‘무위험 자산’으로 통한다. 이에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는 국채 금리를 하한선(floor)으로 삼아 기업 개별의 채무 불이행이나 유동성 위험 등을 반영한 크레딧 스프레드를 얹어 금리가 결정된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채권시장에서는 그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누적된 재정적자와 정치 불확실성 여파로 프랑스 국채(OAT) 금리가 급등한 반면 로레알, 엘브이엠에이치(LVMH), 토탈에너지스 등 프랑스에 있는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가 오히려 국채보다 낮게 형성되는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이처럼 독특한 현상은 단일 통화라는 유로존의 특수한 구조에 기인한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독자적인 통화를 보유한 국가들과 달리 유로존 국가들은 자체 발권력이 없다. 무제한 화폐 발행으로 부도 위험을 면할 권한은 오직 유럽중앙은행(ECB)에 부여된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유로존에서 재무 상태가 가장 건전한 독일 국채(Bund)만을 실질적인 ‘무위험 자산’인 동시에 금리 벤치마크로 인정한다.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독일 국채라는 벤치마크에 프랑스 자체의 재정 건전성 및 정치 리스크라는 ‘국가 신용 가산금리’(Sovereign Spread)가 더해져 국채 금리가 정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국고채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 지방 정부나 공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의 금리 형성과 유사한 구조다.

즉 외형상으로는 프랑스 정부가 발행한 국채이지만, 시장의 평가는 이미 일개 크레딧 채권과 다를 바 없다. 실제 프랑스 정치권의 혼란과 재정 우려가 겹치면서 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 간 10년물 금리 격차는 올해 초 60~70bp(1bp=0.01%포인트)에서 최근 150bp 이상으로 크게 확대됐다.

반면 탄탄한 재무 구조를 지닌 기업들의 채권 금리는 크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프랑스 국채 금리가 더 높이 치솟는 역전이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리 급등을 진정시키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에 나서야 한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당장 금리가 오르고, 스프레드가 확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유럽중앙은행의 개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미 프랑스 국채가 크레딧 채권으로 인식되는 마당에 유럽중앙은행이 매입에 나선다면 시장에서 개별적인 가격 형성이 이뤄져야 하는 크레딧 채권에 정책 당국이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통화가치 유지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포괄적인 대응이라는 중앙은행 본연의 책무를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유럽중앙은행이 프랑스 국채를 매입할 수 있을까? 가장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는 프랑스 국채 금리 상승 여파로 유로존 내 무위험 자산인 독일 국채 금리까지 크게 상승하거나, 유로화 채권 전반에 대한 기피 심리가 부각되는 경우다. 무엇보다 유로화 가치가 크게 흔들린다면 확실한 개입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금리 역전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단일 통화 체제 속에서 재정과 정치적 위험이 초래한 신뢰 하락이 한 나라의 국채를 사실상 크레딧 채권으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향후 시선은 단순한 금리 등락을 넘어 유로화 환율과 유로존 전체의 통화 질서에 미칠 파장으로 향할 것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 & 채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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