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명희 | 소설가
비 오는 일요일, 우체통에 하얀 봉투가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봉투에 쓰인 이름을 보니 동네 어르신이다. 이른 아침에 들러 넣어두신 모양이다. 우표도 없는 편지의 내용은 전화로 통화하고 메일로 받아도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작년부터 마을의 역사를 담은 작은 책 만드는 일을 도와드리고 있는데, 그 책에 들어갈 시 한편이 편지에 담겨 있었다.
어르신은 편지에서 오래전 떠난 친구의 시를 동네 책자에 넣고 싶은데 어떠냐고 내 의견을 묻고 있었다. 동네 책자를 만들면서 친구의 시를 떠올린 어르신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오랫동안 그 시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어쩌면 어르신에게 시는 친구가 쓴 ‘빈 의자’라는 시가 전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80대 어르신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어떻게 써야 할까. 아니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까.
대문이 없는 집에 살다 보니 누군가 집 앞에 먹을 것들을 가져다 놓는 일이 흔하다. 얼마 전에는 단감이 한망 놓여 있었다. 누가 두고 간 건가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나무가 있는 몇집에 물어보니 윗집에 사는 명상이가 놓고 갔을 거라고 했다. 명상이는 자기가 농사지은 작물을 거둘 때마다 자랑하듯 조금씩 놓고 간다. 고추를 따면 고추를, 마늘을 캐면 마늘을, 땅콩을 거두면 땅콩을 놓고 가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닭알 한판을 모아 그 집에 두고 오곤 했다. 고사리를, 쑥떡을, 늙은호박을 철마다 놓고 가는 동네 분들에게도 드릴 게 닭알밖에 없어 한판씩 놓고 오는 게 어느새 닭을 키우는 이유가 되었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아는 친구의 동생이 닭을 키워보라고 권했다. 부화기를 사서 여러 종을 부화시키고 있는데 ‘아메리카웅카나’라는 청계 알 부화에 성공했다며 그냥 가져다 키우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러겠다고 하고 나니 닭집을 짓는 것부터 모든 게 서툴렀다. 동네 친구와 휴가차 집에 온 친구들의 손을 빌려 텃밭 옆에 닭집을 짓고 병아리 스무마리를 받았다.
이유 없이 한마리가 죽었을 때는 부루펜시럽을 조금 물에 타 먹이고 그 이후엔 텃밭을 망치든 말든 풀어놓고 키웠다. 병아리가 닭이 되어 알을 낳았을 때는 얼마나 기쁜지 소리를 질렀고, 암컷이 모이도 안 먹고 알을 품을 때는 신기했으며, 알을 품은 지 22일이 지나 병아리들이 나왔을 때는 잔치를 할 판이었다. 수탉이 많아 물려 죽은 암탉은 묻어주었는데, 그걸 들은 동네 분은 쯧쯧 혀를 찼다.
닭을 먹지 않고 땅에 묻어버린 웃긴 부부가 산다는 소문이 났는지 언덕 아래 사는 할머니가 수탉을 살 수 있느냐며 찾아왔다. 그러지 않아도 수탉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던 중이라 얼른 가져가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닭집으로 들어가 수탉 두마리 들고 나왔다. 양손에 수탉 날개를 잡고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는 길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멈춰 서며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뒤뚱거리며 걸어갔다.
얼마 전 새벽에 나오니 양파와 햅쌀이 있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물어도 누가 놓고 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산책하다 언덕 아래 할머니 집을 지나는데 수탉을 가져간 할머니가 병아리가 나왔는데 오골계라며 웃었다. 혹시 양파 놓고 가셨느냐고 물으니 통통하고 실한 것만 담았다고 했다.
수탉을 들고 간 분은 양파와 햅쌀을 가져다 놓고, 고추며 땅콩이며 단감을 놓고 가면 닭알을 한판 가져다 놓는 이 방식이 내겐 매번 재밌다. 이번엔 친구의 시를 기억하고 마을 책자에 넣고 싶다고 한 어르신 집에 답장으로 닭알 한판을 놓고 와야겠다. 새벽마다 마을에선 무언가 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