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여권 재발급…‘정부 유출’땐 우리 주민번호도 바꿔줄까

게티이미지뱅크

공군 1호기 탑승자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외교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여권을 재발급하는 가운데, 일반 국민도 정부 등 공공기관의 관리 소홀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을 때 이를 바꿀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 과실로 번호가 유출됐더라도 실제 2차 피해를 입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8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 교체는 행안부 산하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에 신청한 뒤 심의를 거쳐야 한다. 위원회는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생명, 신체, 재산에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한해 신청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 성폭력·성매매 피해자,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범죄 피해자 등이다. 공익신고자, 특정강력범죄 피해자, 학교폭력 피해 학생 등도 변경 사유가 인정되면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범죄 경력 은폐나 채무 변제 등 법적 의무를 회피할 목적이 있을 땐 청구가 기각된다.

하지만 정부 포털이나 국세청, 법원행정처 등 공공기관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다는 사실만으로는 번호를 바꿀 수 없다. 지난 5일에도 행안부가 운영하는 정보공개포털에서 주민등록번호 13자리와 암 진단 정보 등이 유출되면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관리 책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은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현행 규정상 정부의 과실 여부는 변경 요건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예컨대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신분증 사본을 넘긴 사례처럼 구체적인 피해 가능성을 입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승인 기준이 꽤 까다롭다”고 말했다. 실제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가 시행된 2017년 6월부터 올해 9월까지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은 모두 1만3314건 접수됐다. 위원회가 심의(의결)를 마친 1만1879건 가운데 인용 결정이 내려진 건 8276건으로, 전체의 69.7%를 차지했다. 기각은 3546건(29.9%), 각하는 57건(0.4%)으로 집계됐다.

신청 사유별로 보면, 보이스피싱 피해가 6233건(46.8%)으로 가장 많았다. 사기·해킹 등 기타 재산 피해가 3517건(26.4%)으로 뒤를 이었고, 신분도용 1382건(10.4%), 가정폭력 982건(7.4%), 상해·협박 625건(4.7%), 성폭력 340건(2.6%), 명예훼손·학교폭력 등 기타 235건(1.8%) 순이었다.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가 도입된 배경에는 2011년 ‘네이트·싸이월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다. 당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요구했지만 관할 구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2012년)과 2심(2013년)은 잇따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들은 대법원 상고와 별도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주민등록법 조항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015년 12월 헌재는 “주민등록번호 유출 또는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 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번호 변경을 일률적으로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밝혔다. 이후 국회의 입법을 통해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다만,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면 한동안 일상생활의 번거로움이 따른다. 의료기관이나 은행, 통신사, 민간인증서 발급기관 등에 변경 사실을 직접 알리고 관련 정보를 일일이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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