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주의’의 탄생 [유레카]

‘진영주의’(Campism)는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윤리적 정당성이나 객관적 사실관계 대신 ‘내 편에 유리한가’를 기준 삼는 태도다. 용어의 탄생은 1947년 9월 폴란드에서 개최된 코민포름 창립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9개국 공산당 지도부가 참석한 이 대회에서 스탈린의 심복 안드레이 즈다노프는 세계가 ‘미국 중심 제국주의·반민주 진영’과 ‘소련 중심 반제국주의·민주 진영’으로 양분됐다는 기조 보고를 한다. 세계혁명의 성패는 소련이라는 국가와 사회주의 진영을 지켜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개별 국가의 혁명세력은 소련과 진영의 전략적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논리(진영 테제)였다.

‘스탈린주의 지정학’의 상징이던 이 용어가 경멸적 의미를 담게 된 건 1970년대 이후다. ‘적(미국)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단순 논리에 근거해 소련과 제3세계 국가들의 폭정을 옹호하는 구좌파의 태도를 서구의 반스탈린주의 좌파들이 ‘진영주의’ ‘바보들의 반제국주의’라 비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선 1980년대 뒤늦게 수입된 동유럽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진영 테제’가, 1989년 사회주의권 붕괴 뒤에는 ‘진영론 비판’이 급진적 지식 사회에 유통됐다. ‘진영논리’ ‘진영주의’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건 2000년대 이후인데, 이 시기는 ‘보수적 자유주의 정당’에 머물던 민주당이 운동권 세력을 흡수하고 서구 좌파의 의제 일부를 수용하면서 ‘진보 진영’의 주요 구성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와 겹친다.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X) 게시글에서 진영주의를 언급했다. 그는 “좌든 우든 맹신과 극단주의, 진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며 “내 편이 하는 말은 모두 옳고 상대편이 하는 말은 모두 그르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심각한 상태다. 그런 걸 보통 광신이라고 한다”고 썼다. 검찰·사법개혁을 둘러싼 여권 내 강온 갈등, 최근 자신의 ‘이주민’ 관련 발언에 쏟아진 진보진영의 비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표현이 격했지만, 메시지 자체는 수긍할 만하다. 다만 진영주의를 ‘광신’이란 개인의 인지적 결함과 연결한 대목에는 한마디 보탤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진영주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한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구조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언급한 문제적 행태는 그 구조의 압력 아래 구사된 정당과 정치인의 전투적 동원 전략에 유권자가 호응하며 만들어진 정치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 수혜자에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세영 논설위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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