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일본·영국·이탈리아의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 사업인 ‘글로벌 전투 항공 프로그램’(GCAP)에 참여할 뜻을 밝힌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 안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9일 “메르츠 총리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만나 일·영·이탈리아 3국이 추진하는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계획에 협력할 수 있다는 뜻을 언급했다”며 “일본 정부 안에서 전투기 개발 계획이 지연되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메르츠 총리는 전날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30여분간 회담을 한 뒤 경제 안보와 방위 협력 강화 등에 합의했다. 일본 외무성은 공식 자료를 통해 “두 정상은 독일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적극 관여하고 있는 점을 환영했다”며 “양국 부대 간 협력을 심화할 기회와 방법을 검토했고, 방위산업 협력도 추진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메르츠 총리가 이날 다카이치 총리와 공동 기자발표 자리에서 “전투기 분야에서도 협력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게 주목받았다. 일본은 현재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미국의 5세대 전투기 ‘F-35’를 뛰어넘는 최첨단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항공자위대 주력인 F-2 후속 기종으로 2035년 실전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에 나선 세 국가 사이에는 미묘한 온도 차가 있다. 일본은 전투기 개발을 서둘러 F-2를 대체하는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 걸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반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영국 정부는 공동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 한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최근 독일에 전투기 공동 개발 참여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날 메르츠 총리의 발언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안에서는 메르츠 총리의 발언을 경계하는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쪽은 독일의 이런 행보를 경계해 왔다”며 “일본 정부 안에서도 메르츠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곤란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짚었다. 이미 3개국이 업무 분담을 마쳤는데 독일이 개발에 합류하면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의 한 관계자는 이 매체에 “독일이 합류하면 일본·영국·이탈리아가 이미 결정한 업무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츠 총리가 이번 방일 일정에 전투기를 포함한 항공기 제작 대기업 에어버스의 간부를 데려온 것도 일본 쪽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지난 2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에어버스가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 참여 문제를 놓고 영국 방산업체 비에이이(BAE)시스템즈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메르츠 총리가 말한 ‘전투기 분야의 협력’이 어느 수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도 독일 정부가 차세대 전투기의 구매를 염두에 두고 개발 정보를 얻는 ‘옵서버’ 자격을 원하는 거라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영국·이탈리아는 지난 7월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에 캐나다가 옵서버로 참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