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엘리엇 배상 1530억, 국고로 갚고 끝낼 일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열린 KH컬렉션 순회전 갈라 디너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과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나온 패소 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불복해서 취소소송을 내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적고, 지연이자 등 추가로 들어갈 비용이 만만찮은 현실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려 1530억원에 이르는 배상액을 국고에서 지급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법무부는 지난달 말에 나온 환송 중재판정에 대해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정부 대리 로펌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엘리엇이 중재를 신청한 지 8년여 만에 정부는 배상 원금과 지연이자 등을 합쳐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이 배상금은 우리 정부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내린 정책의 결과로 내야 하는 비용이 아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박근혜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탓에 발생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유리한 조건의 합병을 성사시키려고 국민연금 쪽에 압력을 가했다. 이를 주도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2022년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됐다. 이재용 회장도 경영권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2021년 유죄가 확정됐다. 이번 중재판정부도 한국 정부의 합병 개입과 삼성물산 주주 엘리엇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1530억원은 이처럼 권력과 재벌이 결탁한 ‘국정농단’이 남긴 청구서다.

법무부는 이 청구서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배상금 지급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만 밝힐 뿐, 책임자들에게 구상권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할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정부는 이 배상금을 국민이 부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국회와 시민사회는 2023년 첫 중재판정이 나온 직후부터 책임자에게 배상금을 물리라고 요구해왔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문형표 전 장관과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합병의 수혜자인 이재용 회장 등이 그 책임자들이다. 물론 법적 장벽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제투자분쟁에서 구상권과 손해배상이 인정될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이들이 남긴 비용을 아무런 노력 없이 국민 세금으로 메우고 끝냈다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면, 법무부가 이번 배상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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