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최고 해변, 해안선 침식에 죽어가는 산호초까지 생태계 '휘청'
현지 당국 노력에도 개선은 조족지혈…엘니뇨 영향 갈수록 증대
바다 의지해 먹고사는 사람들 "손님 없어 파리만…이게 다 엘니뇨 탓"
[※ 편집자 주 = 최근 중국·네팔 접경지대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산악지대 대홍수가 발생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대규모 빙하가 붕괴하면서 홍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빙하 붕괴뿐 아니라 가뭄, 폭염, 엘리뇨 등 기후재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2022년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시리즈에 이어 이상 기후 충격이 현실화한 현장을 다시 찾는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3주 동안 르포 5편 등이 게재됩니다.]

(라파스[멕시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멕시코 최고의 해변이라는 발란드라 해변. 물살이 약함에도 깎인 부분이 많았다. 2026.09.28. buff27@yna.co.kr
(라파스[멕시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해수스 산체스 씨는 도마질하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싱싱한 생선 팝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주(州)의 주도 라파스의 한 수산물 시장에서 만난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장사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목청의 크기는 수입에 비례하지 않았다. 주변은 생선 냄새를 맡고 온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라파스 최대 수산물 시장인 '메르카도 마데로'에서 일하는 그는 요즘처럼 손님 없는 날도 드물다고 했다. 생선 가격은 올랐고, 잡히는 어종도 변하면서 고객 발길이 뚝 끊기면서다.
"이게 다 엘니뇨 때문입니다."

(라파스[멕시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해수스 산체스 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09.28. buff27@yna.co.kr
엘니뇨는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해 전 세계에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보통 2~7년 주기로 발생하는데 올해는 역대 최악의 엘니뇨가 찾아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2.0도 이상 높다는 '슈퍼 엘니뇨' 기준을 이미 뛰어넘었다.
미국 시카고대 기후영향연구소는 올해 가을부터 내년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45만여명이 엘니뇨로 인한 온열질환으로 사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재산 피해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산체스 씨도 그런 흔한 피해자 중 한명이다. 그는 "예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는 엘니뇨의 영향력이 훨씬 도드라진 것 같다. 어종도 바뀌었고, 어획량도 줄었다"면서 "버티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어민이나 상인처럼 생업에 직격탄을 입는 정도는 아니지만, 소비자들 역시 피해자다. 우버 기사인 후안 아르만도 씨는 "체감적으로 생선 가격이 20~40%는 오른 것 같다"며 "요즘은 해산물 식당에도 잘 안 가는 편이다. 생선이 너무 비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라파스[멕시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라파스에 있는 엘코로무엘 해변 앞 바다. 2026.09.28. buff27@yna.co.kr
엘니뇨는 인간의 삶만 곤궁하게 하는 건 아니다. 자연의 지형지물과 환경 변화도 초래한다.
바하칼리포르니아주는 해변이 아름다워 은퇴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멕시코인뿐 아니라 미국인과 기타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수 거주한다. 특히 남부 끝에 있는 라파스는 상업 중심지면서도 관광지로도 이름이 높다.
시장 근처에서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인근 엘코로무엘 해변이 주민들의 더위를 식히는 '명소'라고 했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기대하며 우버를 타고 엘코로무엘 해변에 도착했으나, 기자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붕괴 위험'(Riesgo de Derrumbe)이라 쓰인 핏빛 경고문이었다. 낙석이 덮칠 수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 달라는 표지였다.

(라파스[멕시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라파스에 있는 엘코로무엘 해변에 자리 잡은 경고문. 2026.09.28. buff27@yna.co.kr
경고문이 대문처럼 해변을 장식한 건 파도와 해류가 바닷가와 절벽의 기반암과 모래층을 깎아 먹으면서 위쪽 지반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해변보다 부드러운 물결이 이는 바다임에도 침식이 크게 진행되는 것이다.
20년째 라파스에 거주하고 있다는 영국 출신 앨버트 다리오 씨는 "이렇게 깎인 곳이 라파스 지역에는 너무 많다"면서 "기후 변화로 인한 해안선 침식이 심각하다"고 했다.

(라파스[멕시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오전 발란드라 해변. 2026.09.28. buff27@yna.co.kr
해안선 침식 상태를 더 확인해보기 위해 이튿날 발란드라 해변(Playa Balandra)을 찾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30분여를 내달리자, 황량한 선인장 군락지 너머로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멕시코가 자랑하는 국립 보호구역이다. 수심이 얕고 물길이 잔잔해 '태평양의 천국'이라 불린다.
주 당국은 혹자들이 "멕시코 제일 해변"이라고 칭하는 발란드라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선 하루 해변을 찾을 수 있는 인원을 900명으로 철저하게 제한했다. 기지국 설치도 엄금했다. 당연히 휴대전화는 터지지 않았다. 우버도, 택시도 부를 수 없어 차가 없는 뚜벅이들은 하루 몇 차례 운행하는 버스에 의지해 드나들 수밖에 없는 오지(奧地). 발란드라 해변은 그런 곳이었다.

[AP=연합뉴스]
이런 철저한 보호 속에서도 발란드라 해변은 엘니뇨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동태평양과 코르테스해(Sea of Cortez)를 동시에 덮친 수온 이상 상승 현상의 최전선이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어루만진 물의 온도는 따뜻했고, 파도는 거의 일지 않았지만, 물속에선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발란드라의 상징인 찬란한 산호들은 백화(白化·Coral Bleaching)돼 가고 있었다. 하얗게 변하는 것. 그것은 자연에서 죽음을 의미했다.
멕시코 국립 연구기관인 북서부생물학연구소의 페르난도 아랑세타 연구원은 "최근 수년간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발란드라 쪽 근처의 산호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파스[멕시코]=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오전 발란드라 해변 인근에서 해변 관리인 알렉시스 사우세도 씨가 인터뷰에 앞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2026.09.28. buff27@yna.co.kr
엘니뇨와 지구 온난화가 결합해 만들어낸 이상 고조(異常高潮)는 잔잔했던 이 연안의 백사장을 매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곱고 하얀 모래사장은 순한 물길에 포획돼 점점 바다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고, 해안 경계부를 지키는 기암절벽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밑동이 쓸려나간 채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태평양의 천국'은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거침없이 진행되는 소리 없는 재앙 속에 그렇게 서서히 퇴조하고 있었다.
"엘니뇨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산호초 백화, 해안선 침식, 맹그로브 유실 등이 어종 변화와 철새 번식 등 해안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발란드라 해변 관리인 알렉시스 사우세도 씨의 말이다.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