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 출산정책…숫자보다 삶이 먼저 [세상읽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여년 만에 인구전략위원회로 새롭게 출범한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새 안내판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김정석 |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장

십여일 전 인구전략위원회가 출범했다. 21년간 이어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뒤로하고 새 체제가 시작되었다. 인구정책이 어디로 향할지, 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저출산은 우리 사회가 대응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국가가 이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출생아 감소가 이어지면 미래의 인구구조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출산을 둘러싼 개인의 선택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개인에게 출산은 자신의 삶과 관계를 바꾸고, 태어난 아이를 오랜 시간 책임지며 애정을 쏟아야 하는 선택이다.

요즘 인구정책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람 중심’이라는 말이 붙는다. 필자 또한 인구정책은 숫자보다 사람의 삶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면 ‘사람 중심’도 겉만 번듯한 수사에 그칠 수 있다. 사람 중심이라는 것은 출산율이나 출생아 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을지 결정하는 사람과 태어난 뒤 자신의 삶을 살아갈 아이를 정책의 중심에 나란히 두는 것이다. 기존 정책에 새 이름을 붙이는 데 머물지 않으려면, 정책이 누구를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기준이 있어야 한다. 세가지 원칙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결혼과 출산에 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도, 낳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어느 한쪽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라고 해서 개인에게 결혼이나 출산의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지만, 현실의 제약에 떠밀린 결정까지 온전한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이를 원하지 않아 낳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를 원하면서도 현실 때문에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바라던 삶과 실제 살아갈 수 있는 삶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둘째는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 그 바람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정책이 할 일은 특정한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선택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그 앞을 가로막는 어려움을 줄이는 데 있다. 출산은 한 시점의 사건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갈 앞으로의 긴 시간을 내다보는 결정이다.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 살 집은 있는지, 아이를 낳은 뒤 돌봄을 나눌 수 있는지는 모두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조건을 개인의 힘만으로 바꾸기 어렵다면 사회가 나설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과 저출산에 대응하는 일이 반드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출산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원했던 사람이 현실의 제약 때문에 그 바람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출생아 수를 늘리기 위해 사람의 결정을 바꾸려 하기보다, 바라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조건을 넓히는 일이 먼저다.

셋째는 태어난 아이의 삶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출산은 부모가 결정하고, 아이는 태어난 뒤 부모가 놓인 조건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 삶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는 자신의 출생을 선택한 적이 없다. 누구에게서 태어날지, 가정의 형편과 가족 형태가 어떨지,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출생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며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저출산을 걱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래 사회를 이루어갈 구성원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몇명의 아이들이 태어나는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태어난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아동을 보호하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 중심 출산정책은 출산율과 출생아 수보다 사람의 선택과 실제 삶의 조건을 먼저 본다. 출산율은 사람들의 삶과 선택이 모여 나타나는 결과다.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 그 바람을 실현하도록 돕고, 태어난 아이가 보호받으며 잘 자라도록 하는 일은 저출산 여부와 관계없이 필요하다. 인구전략위원회의 출산정책이 ‘저출산 대응’에 머물지 않고, 사람 중심의 출산정책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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