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청각장애인→영화관 소송서 대법 최초 '쉬운 판결문'
"서울고법은 영화관의 비용만 너무 많이 생각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대법원이 영화관에서 시·청각 장애인에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해야한다고 판결한 3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차연)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판결 관련 기자회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2026.9.3 dwis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영화관에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통해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길 권리가 보장됩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2호 법정. 시각·청각 장애인 4명이 '장애인도 차별 없이 영화를 즐기게 해달라'며 CJ CGV를 비롯한 멀티플렉스 3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 선고에서 주심인 천대엽 대법관은 이렇게 쉬운 말로 판결 이유를 읽어 내려갔다.
법정 앞쪽 스크린에는 천 대법관의 말이 자막으로 흘러나왔고, 한쪽에서는 수어 통역사가 수어로 이를 전달했다. 대법원 최초로 '이지리드'(읽기 쉬운) 판결문도 제공됐다.
장애인인 원고를 위해 판결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명한 글과 시각 자료로 판결문을 쓰고, 법정에서도 이를 토대로 쉬운 말로 판결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대법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날 대법원은 CJ CGV·롯데컬처웍스·메가박스중앙이 시각·청각장애인인 원고들에게 화면해설과 자막, 수신기기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2021년 11월 나온 2심 결론과도 같다.
다만 2심은 차별을 고치기 위해 '300석 이상 규모의 상영관에서 전체 상영횟수의 3%'만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라'고 했는데, 대법원은 이런 방식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천 대법관은 "이렇게 하면 자막과 화면해설을 매우 조금만 제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통해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길 권리가 있고, 영화관도 자유롭게 운영할 권리가 있어 법원은 둘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고법은 영화관의 비용만을 너무 많이 고려했다"며 2심 판결이 잘못된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구체적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2심은 모든 관객이 참여하는 '개방형'과 화면해설·자막이 필요한 이들에게만 수신기기가 제공되는 '폐쇄형' 상영방식으로 나눠 차별구제 방식을 판단했다.
개방형 상영방식은 상영 횟수, 폐쇄형 상영방식은 상영관의 범위라는 기준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최종적인 구제 조치를 정하면서는 개방형과 폐쇄형 상영방식 경우 각각에 상영 횟수와 상영관 범위를 모두 적용했는데 이는 잘못됐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피고들의 재정적 부담만을 과도하게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심은 폐쇄형 상영방식에서 모든 상영관에 화면해설 수신기기와 자막 수신기기를 스크린당 2개 이상 갖추려면 드는 비용인 81억7천만원은 과도한 부담이라고 판단했다.
만약 수신기기가 제공되는 상영관 범위를 300석 이상 좌석 수를 가진 상영관으로 제한할 경우 소요 비용은 12억2천만원으로, 여기에 수신기기를 위해 상영관 내 서버가 아닌 온라인 서버를 이용할 경우 소요 비용은 4억9천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피고들의 국내 스크린 점유율 등에 비추어 4억9천만원이라는 비용은 피고들에게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힐 정도는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이 '81억원이 왜 과도한 부담인지' 따져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설령 심리가 이뤄졌다 해도 피고들은 2020∼2021년 매출액 급감을 강조했는데, 이는 코로나19 유행 때문으로 "극히 예외적인 사정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즉, 81억원이 코로나19 유행 이전 기간, 유행 기간을 포함한 변론 종결까지 매출액 등 추이를 살핀 다음에야 비로소 81억원이 과도한 비용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에선 관객들에게 화면해설·자막과 수신기기를 제공해오고 있단 점도 짚었다.
대법원은 이지리드 판결문에서 "영화관이 얼마나 돈을 버는지, 또 자막과 화면해설에 드는 돈을 감당할 만한지,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함께 영화를 즐기게 하면서도 영화관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를 살펴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판결 취지에 따라 화면해설·자막 제공의 범위를 넓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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