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 ③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정책을 논할 때, 1976년과 1977년은 빼놓을 수 없는 시기이다. 1970년대 초 본격화된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은 1970년대 후반 급격히 확장되었다. 1973년 준공된 포항종합제철은 1976년 2기 설비를 완공해 조강 생산 능력을 103만t에서 260만t으로 늘렸고, 1979년까지 이를 700만t 규모로 늘리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1974년 조성된 창원종합기계단지(현 창원국가산업단지)에도 공장이 속속 들어섰다. 1976년 창원종합기계공장을 착공한 현대양행은 이후 한국중공업으로 공기업화되었다가 2001년 민영화되어 현재의 두산에너빌리티가 되었다. 1977년 전남 여수에는 당시 단일 공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였던 남해화학 제7 비료 공장이 준공되었다. 같은 해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고, 박정희 정부의 마지막 경제 개발 계획이었던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다.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 가동에 들어간 것 역시 1977년이었다.
중화학공업이 팽창할수록 전력과 에너지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70년 9.2TWh에 불과하던 국내 전력 생산량은 1975년 19.8TWh로 5년 만에 2.2배 늘었고, 1977년에는 26.6TWh를 기록하며 불과 2년 만에 34.3%나 급증했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상공부 내 에너지·전력 부서를 독립시켜 ‘동력자원부’를 신설하고, 석유, 석탄, 전력 공급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했다. 1978년 출범한 동력자원부는 발전소와 송·변전 설비의 인허가를 대폭 간소화하고 토지 수용을 신속하게 밀어붙이고자 그해 전원개발특례법(현 전원개발촉진법) 제정에 착수하기도 했다.
50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2026년 현재 펼쳐지는 풍경과 놀랍도록 겹친다.
과거 철강, 기계, 석유화학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부 주도로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 계획이 발표되고,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기간전력망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메가 특구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흐름은 1970년대 말 개발주의와 공급 일변도의 국가 산업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얼마 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40년까지 3대 메가프로젝트에 필요한 전력 수요가 약 27GW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전체 핵발전소 용량(26GW)보다 많은 양이다. 단기간에 이 많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뿐만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 의존도를 높이고 석탄 화력 퇴출 시점을 늦출 수밖에 없다. 여기에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필요성 언급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 중 무리한 전력 수요 팽창에 제동을 걸고, 온실가스 감축 관점에서 정부 내 ‘다른 목소리’를 냈던 부처는 환경부였다. 비록 힘이 약해 환경 단체들로부터도 비판받았지만,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와 기후변화영향평가 등 법적 장치를 통해 최소한의 견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모습은 1970년대 말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공급을 핵심 임무로 했던 ‘동력자원부’를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이 직접 환경영향평가 단축을 언급해도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를 바로잡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 보전이라는 환경부의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위해 환경부가 통째로 흡수·소멸된 형국이다.
기후위기 시대, 기후 문제를 담당하는 부처의 핵심 목표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전력 수요가 정말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기후 목표와 생태적 한계 안에서 얼마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기후’라는 간판만 단 21세기의 ‘동력자원부’가 될 것이다. ‘기후를 파괴하고 온실가스 늘리는 메가프로젝트 중단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실행하라’는 요구를 내건 9·19 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