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알린 데버라 스미스 "젊은날 스포트라이트에 상처"

영문판 번역으로 세계 무대에 한강 알린 '일등공신'…서면 인터뷰

"관심 쏟아질 상이라 한강 걱정됐다…언젠간 딸 보여주고파"

"김해자 시 번역중, 6년만에 10월 방한…한국어에 둘러싸일 일 꿈같아"

2016년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데버라 스미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한 2016년, 한강 옆에 나란히 선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한국과 아무런 인연이 없다가 한국어를 독학으로 시작한 지 6년여밖에 되지 않은 28세의 신진 여성 번역가가 세계적 권위의 상을 거머쥔 '소설 같은 스토리'에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그 스토리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신인 번역가 개인의 화제성이 높았던 만큼 오역 논란은 더 큰 홍역이 됐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부터 한강을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린 일등공신으로 재조명받았으나 스미스는 언론 앞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27∼29일(현지시간) 옥스퍼드대와 주영한국교육원이 스미스를 초청해 번역 지망생들을 위한 워크숍을 연 것을 계기로 연합뉴스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스미스는 한강이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됐던 당시에 "그런 상에 따르는 주목의 강도 때문에 한 작가를 좀 걱정했다"며 "(공동 수상한) 부커상과 달리 노벨상은 나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기뻤다"고 말했다.

또한 "처음 겪었을 때 얻은 교훈으로 어떤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며 "당시에는 인도에서 살면서 아기를 키우느라 바빴다. 그래서 문학계로부터 좋은 의미로 완전히 단절돼 있었고 격리돼 있었다"고도 말했다.

2016년 부커상 시상식의 한강과 데버라 스미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사우스요크셔 출신인 스미스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한·영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석·박사 과정에서 한국 문학을 공부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공동번역)과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안도현의 '연어' 등을 영어로 번역했다.

2015년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전문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를 설립해 편집인을 지냈고 2018년 영국왕립문학회(RSL) 회원(fellow)으로 선출됐다.

모국어인 영어로 문학을 전공한 영국인으로서 스미스의 번역은 원작의 문학성을 섬세하게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옥스퍼드대 워크숍을 기획한 지은 케어(조지은) 교수는 영어권 속 K-문학 확산의 과제로 "영어의 어감을 잘 살리면서도 한국어 특유의 다양한 뉘앙스를 놓치지 않는 번역가를 키우는 게 핵심"이라고 꼽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스미스는 일종의 개척자다.

앞서 번역이 특히 어려웠던 부분과 만족하는 부분을 묻자 스미스는 5·18민주화운동을 인간의 문제로 다룬 '소년이 온다'(영문판 'Human Acts')의 문장들을 꼽았다.

주인공 동호가 친구 누나인 정미와 소소한 옛 기억들이 '가슴을 저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부분을 번역할 때 'lacerated'라는 단어를 선택했던 것, 마당에서 펌프질로 올린 물로 양은 대야를 채우는 장면을 물이 대야에 부딪히는 소리(crackle)로 표현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또한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소설 속 문장도 꼽으면서 "이 작품, 그리고 한강 작품 전체에 중대한 질문이기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늘 삶과 언어에 속한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씨름하는 윤리적 문제들을 향한 애정과 존중의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번역해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데버스 스미스가 번역한 한강 소설 영국판
[촬영 김지연. 재판매 및 DB 금지]

스미스는 한국어를 선택한 지 16년이 흐른 지금 본인에게 한국어란 어떤 의미인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부커상 공동 수상 이후 받았던 집중 조명이 자신에게 상처가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때 한국 문학계의 일원이었으나 의식적으로 빠져나오기를 택했다. 예기치 않게,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스포트라이트 속에 던져졌고, 그 많은 측면이 내게 상처를 입혔다"며 "슬프게도 이 때문에 한국, 심지어 한국어에도 부정적인 연상이 너무 많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로 10년이 흘러 신예를 벗어나 중견 번역가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스미스는 오는 10월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김해자의 시집을 번역 중이라고도 소개했다.

스미스는 "올해 10월에 나이가 더 들고, 바라건대 더 현명해진 채로 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또한 다시 한국말에 둘러싸이고 2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일이 '꿈 같이' 느껴질 것이라면서 "내 티머니 카드를 아직 쓸 수 있기를 바란다"는 유머도 곁들였다.

앞서 소설가 한강과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언급해온 스미스는 예전만큼 한강과 자주 연락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딸을 한 작가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도 말했다.

2016년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데버라 스미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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