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의사 엄융의의 K-건강법…식탁 위를 조심하라, 모르고 먹는 것들

[※ 편집자 주 = 문화체육관광부 집계 기준 2025년 K-콘텐츠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K-콘텐츠와 K-컬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향유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본인 제공]

좋은 것을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나쁜 것을 피하는 일이다. 문제는 무엇이 나쁜지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매일 먹고 있다는 데 있다. 식탁 위에는 우리가 모르고 삼키는 화학물질이 적지 않다. 편리함이 밥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도시 거주자가 하루에 얻는 열량의 상당 부분은 이미 공장을 거쳐 온 식품에서 나온다. 자연에 없던 물질이 그 편리함에 얹혀 함께 몸속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 장벽이 무너질 때

우리가 먹는 음식은 소화·흡수돼 혈액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엄밀히 말해 '내 것'이 아닌 이물질이다. 몸속에 있지만 아직 내 것은 아닌 셈이다. 그래서 소장과 대장의 점막이 하는 일이 결정적이다. 이 점막은 두 가지 임무를 맡는다. 하나는 물리적 장벽을 이뤄 아무 음식물이나 혈액으로 새어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해로운 물질의 침입을 걸러내는 면역 기능이다.

이 촘촘한 장벽은 나쁜 음식 앞에서 허물어진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 지나치게 처리된 음식, 첨가물이 많은 음식은 장 점막에 염증을 부른다. 염증이 오래가면 점막의 투과성이 높아져 흡수돼서는 안 될 물질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속 쓰림과 더부룩함, 피부 발진으로 시작되지만, 방치하면 관절통과 비만, 우울증으로까지 번진다. LPS(지질다당류, Lipopolysaccharide)라 알려진 다당류·지방 화합물이 흡수되면 2형 당뇨병과 류머티즘, 치매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장 점막 관리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LPS의 정체를 알면 경계심은 더 커진다. LPS는 그람음성균(붉은색 또는 분홍색으로 나타나는 세균으로 얇은 세포벽과 독성 물질인 지질다당류을 가지고 있어 항생제 침투가 어렵고, 감염 시 패혈증 등 심각한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음)의 바깥 세포막을 이루는 성분으로, 톨유사수용체(TLR4, Toll-like recepto 우리 몸의 선천면역을 담당하는 핵심 단백질)를 통해 온몸에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원래는 위장관 안에 갇혀 있어야 할 물질이다. 그런데 2007년 프랑스 연구진은 고지방 먹이를 준 쥐의 혈중 LPS 농도가 정상 먹이를 준 쥐보다 높아져 간과 지방조직에 염증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상태를 '대사성 내독소혈증'이라 이름 붙였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서구식 고지방 식사를 하는 사람의 혈중 LPS는 건강한 식사를 하는 사람보다 2~3배 높게 나타난다. 더 고약한 것은 악순환의 고리다. 일단 새어 나온 LPS는 장 점막의 치밀이음부를 더 헐겁게 만들어, 더 많은 LPS가 새어 나오도록 장벽을 거듭 무너뜨린다. 한 번 열린 틈이 스스로 커지는 셈이니, 초기에 장 건강을 챙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첨가물이 다섯 가지 넘는 식품은 피하라

식탁 위의 숨은 위험은 식품첨가제, 산화방지제, 방부제, 그리고 옥수수와 콩 같은 유전자 변형 식품(GMO)이다. 조리 기구와 용기, 포장재에서 흘러나오는 물질도 무시할 수 없다. 하버드대 연구는 햄버거와 핫도그 같은 가공육이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가공육의 위험은 이미 국제기구의 공식 판정을 받은 사안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가공육을 '인체 발암물질(1군)'로 분류했는데, 이는 담배·석면과 같은 등급이다. 물론 같은 1군이라고 해서 담배만큼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근거는 뚜렷하다. 10여 개 연구를 종합한 결과 가공육을 매일 50g씩 더 먹을 때마다 대장암 위험이 18%씩 높아졌다. 50g은 핫도그 하나, 또는 베이컨 몇 조각에 불과한 양이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3만4천여 명이 가공육 과다 섭취와 관련된 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억하기 쉬운 원칙이 하나 있다. 첨가물이 다섯 가지 이상 들어간 식품은 먹지 말라는 것이다. 성분표가 길수록, 그것이 우리 몸에 낯선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이 단순 셈법에는 근거가 있다. 성분표가 길다는 것은 곧 원재료보다 공정이 앞서는 '초가공식품'이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유화제와 인공감미료, 색소가 겹겹이 쌓인 식품일수록 앞서 말한 장 점막 염증과 대사 교란을 부르기 쉽다. 성분표의 길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경고등인 셈이다.

◇ GI가 아니라 GL을 보라

혈당과 체중을 관리할 때 흔히 칼로리를 따지지만, 그보다 유용한 지표가 있다. 바로 GL(혈당부하지수)이다. GI(혈당지수)가 음식이 포도당으로 바뀌는 속도를 뜻한다면, GL은 실제로 먹는 양까지 고려한 값이다. 수박은 GI가 높지만 보통 먹는 양으로는 대부분이 물이라 GL은 매우 낮다. 그래서 GI 수치보다 GL이 현실적인 잣대가 된다.

숫자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 통상 GL은 10 이하면 낮고, 20을 넘으면 높다고 본다. 수박은 GI가 70을 웃돌아 '고혈당 식품'처럼 보이지만, 한 번에 먹는 양으로 계산한 GL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GI만 보고 멀리했다면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 셈이다. GI라는 속도 지표에 섭취량이라는 현실을 곱해야 비로소 몸이 실제로 받는 부담이 드러난다.

GL이 낮을수록, 곧 음식이 천천히 포도당으로 바뀔수록 몸도 완만하게 반응한다. 췌장은 혈당을 세포로 나르는 인슐린을 분비하는데, GL이 낮으면 조금씩 천천히 내보내도 되니 무리가 없다. 반면 GL이 높으면 인슐린이 급히 많이 나와야 해서 췌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금세 허기가 져 비만으로 이어지기 쉽다. 흰 빵과 단 시리얼, 도넛과 와플은 GL이 높고, 저지방 요구르트와 신선한 과일, 콩류는 낮다.

◇ 배불러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배가 고프면 먹고 부르면 멈춘다. 이 신호를 조절하는 것이 렙틴과 그렐린이라는 호르몬이다. 렙틴은 주로 지방세포에서 나와 포만감을 전하고, 그렐린은 위장관에서 나와 허기를 알린다. 지방세포가 많은 비만인은 원래 렙틴이 많이 분비돼 마른 사람보다 빨리 배부름을 느끼고, 그 결과 체중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리 기전이다.

렙틴은 1994년 처음 규명된 뒤 비만 연구의 물길을 바꾼 호르몬이다. 렙틴은 뇌 시상하부의 활꼴 핵에 있는 신경세포에 작용해 식욕과 에너지 균형을 조절한다. 이론대로라면 살이 찔수록 렙틴이 늘어 식욕이 억제돼야 하지만, 실제 비만인의 몸에서는 정반대 일이 벌어진다. 비만인은 혈중 렙틴이 높은데도 시상하부가 더 이상 이 호르몬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아 식욕을 억누르지 못한다. 왜 신호가 먹통이 되는가. 렙틴이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시상하부에 만성 염증이 생겨 신호 전달이 막히는 것이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지나치게 처리된 즉석 음식은 이 정상 반응을 억눌러, 배가 불러도 계속 먹게 만든다. 이를 렙틴 저항성 비만이라 부른다. 악순환이 시작되면 체중은 계속 늘고 면역 기능까지 떨어진다. 즉석 음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로리만 세지 말고 얼마나 덜 처리된 건강한 음식을 먹느냐를 봐야 하는 까닭이다. 비만한 사람의 체중 조절이 번번이 실패하는 배경에도 이 렙틴의 고장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식탁 위의 선택은 한 끼의 문제가 아니라, 장벽과 호르몬과 혈당이 얽힌 몸 전체의 균형을 좌우하는 일이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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