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도심의 대피소 [6411의 목소리]

지난 2월26일 새벽 2시38분 냉장식품 물류 정리를 하다가. 황윤아 제공

황윤아 | 편의점 점원

나는 편의점 야간 일을 한다. 보통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그런 곳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일하는 곳은 아주 귀한 편의점이다.

나는 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끄러운 세 아이의 소리가 잦아들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고요한 밤의 소리를 사랑한다.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 바람에 쏴아아 흔들리는 나무 소리와 같이 고요하지만 소란스러운 밤의 소리를 들으며, 밝은 낮엔 세상이 시키는 할 일들에 바빠 미뤄둔 나만의 시간을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편의점에 가곤 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대낮같이 환한 편의점은 내게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내가 일하는 야간 시간은 냉장고에 들어갈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커피, 유제품 등 유통기한이 비교적 짧은 제품이 들어오기 때문에 정리할 물건이 많지 않다. 손님도 많지 않아서 나는 주로 청소에 집중한다. 주택가에 있는 편의점이라 늘 오는 손님들이 비슷하다. 늦은 퇴근 뒤 저녁을 드시러 매일 들르는 아저씨,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맥주를 잔뜩 사는 언니, 근처 공단에서 일하는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 유튜브가 안 된다며 휴대폰 좀 봐달라는 할머니, 출근길에 커피와 담배를 사는 아저씨들…. 이제까지 술집, 카페, 식당, 마트 등 여러 군데에서 일한 경험을 비춰 볼 때 마트와 편의점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느 추운 날, 나는 출근을 했고 한 할아버지가 매장 내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인 밤 11시 전부터 이미 앉아 계셨는데 물건을 정리하고 매장을 청소해야 하는 시간인 새벽 4시가 다 되어서도 할아버지는 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30분 이상 어떻게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다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편의점에 머물러 계시면 안 되고 제가 청소를 해야 하니 댁으로 돌아가달라고. 그러자 할아버지는 갈 곳이 없으니 아침까지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난처했다. 그러면 편의점에 계실 것이 아니라 파출소에 가 도움을 받으셔야 한다고 112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러지 말아달라고 하셨지만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갈 곳이 없다면 편의점이 아니라 파출소에 도움을 받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경찰관 인계를 거쳐 편의점을 나가셨다.

한달쯤 지났을까? 그 할아버지가 다시 오셨다. 근데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눈빛이 그때와 달랐고 입 주변에 침을 흘린 자국이 있었다. 그러면서 편의점 옆에 있는 중국집이 왜 문을 안 열었냐고 물으셨다. 한달 사이 치매에 걸리셨구나! 일단 테이블에 앉으시라 하고 배가 고프신 거 같아서 김밥과 따뜻한 어묵 국물을 내어드렸다. 그리고 바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들은 금방 도착했고,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뒤 상태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언뜻 들어보니 가족 없이 혼자 사시는 듯했다. 어떠한 연유로 혼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치매에 걸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그저 배가 고파 밥을 사 먹으러 나오셨을 것이다. 그래서 한밤중 불 꺼진 중국집 앞을 서성거리다가 그 옆에 대낮같이 환한 편의점에 찾아오셨겠지. 고립되어 지내다가 치매에 걸리면 누구에게도 돌봄받지 못하고 이렇게 되어버리는구나 싶으면서 할아버지가 측은해졌다. 그 당시는 추운 겨울이어서 우리 편의점이 24시간 영업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배고픔에 떠돌다 사고라도 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경찰관들이 모시고 간 이후, 그 할아버지는 다시 오시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돌봐줄 만한 복지기관에 연계되어 잘 지내고 계시겠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편의점은 이제 물건을 파는 곳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거 같다. 어떤 편의점은 아이들에게 길을 잃었을 때 안전하게 도움을 구하라고 홍보하며 아동을 보호하는 구실을 맡았고, 우리처럼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은 잠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도심 속 대피소가 되었다.

간혹 손님들이 여자 혼자 야간에 일하는 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어본다. 나는 말하고 싶다. 정말 무서운 건 사람들이 아니라고. 여름밤 꺼지지 않은 편의점 불빛에 끝없이 기어들어오는 새까만 하루살이 떼를 청소하는 게 제일 무섭다고.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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