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막은 카보베르데·독일에 첫 골 퀴라소…축제 참뜻 일깨운 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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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라하라=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화려한 개인기와 숨 막히는 전술 싸움. 세계 최고 스타들이 펼치는 수준 높은 경기력은 월드컵이 주는 확실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그것이 축구의 전부는 아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언더독'의 반란, 결과 앞에서도 낭만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도전이야말로 월드컵을 '지구촌 최대의 축제'로 만드는 진짜 이유일지 모른다.
사상 첫 48개국 체제로 덩치를 키운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출전국이 늘어난 만큼 예전 같은 팽팽한 '빅매치'의 빈도는 줄었다.
대신 생애 처음으로 감격의 본선 무대를 밟은 변방의 섬나라들이 써 내려가는 '여름 동화'가 그 공백을 벅찬 감동으로 메꾸고 있다.
'무적함대' 스페인을 멈춰 세운 투혼의 카보베르데와 7골을 내주고도 진정한 축제다운 모습을 보여준 낭만의 퀴라소가 그 주인공이다.
카보베르데는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스페인과 0-0으로 비기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 스페인에는 라민 야말(바르셀로나) 등 세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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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500여년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다 1975년에야 독립한 인구 52만 명의 아프리카 대륙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지 않았다면 본선행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팀이다.
하지만 카보베르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투혼과 집념으로 감격의 드라마를 썼다.
일찌감치 스페인에 주도권을 내주고 일방적인 '반코트' 경기를 치르면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스페인이 페널티 박스 안팎에서 슈팅 27개, 크로스 40개를 쏟아부으며 맹폭을 가했지만, 몸을 던지는 카보베르데의 끈끈한 육탄 방어를 끝내 뚫어내지 못했다.
특히 최후의 방패로 역사적인 승점 1을 지켜낸 40세의 베테랑 수문장 보지냐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불혹의 나이에 감격의 첫 무대를 밟은 그가 온몸으로 스페인의 맹폭을 온몸으로 튕겨내고 경기를 마친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전 세계가 왜 그토록 월드컵에 열광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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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베르데와 나란히 역사적인 첫 월드컵 진출의 꿈을 이룬 카리브해의 소국 퀴라소 역시 또 다른 결의 감동을 안겼다.
제주도의 4분의 1 크기에 인구 15만명에 불과한 퀴라소는 15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서 '전차군단' 독일에 1-7로 크게 졌다.
점수만 놓고 보면 일방적인 완패지만, 이를 '참패'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퀴라소는 0-1로 끌려가던 전반 21분, 자신들의 월드컵 역사상 첫 유효슈팅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무시무시한 화력을 앞세운 독일에 내리 골을 헌납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지만, 퀴라소 팬들은 대승을 거둔 독일 팬들 못지않게 감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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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점수 차 패배에도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선수들을 향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응원가를 부르며 역사적인 첫 무대를 만끽했다.
팀을 이끄는 만 78세의 노장 딕 아드보카트 감독 역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도전 자체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독일 대표팀의 몸값은 8억5천만유로(약 1조 4천850억원)에 달하지만, 우리 팀은 2천500만유로(437억원) 수준"이라며 "이런 거함을 상대로 패한 것은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성과"라며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그저 우리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단 퀴라소뿐 아니라 꿈의 무대를 밟은 모든 도전자에게 해당하는 말이자, '지구촌 최대의 축제'라는 대회의 본질을 꿰뚫은 묵직한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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