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내용을 읽고 한참 동안 마음이 먹먹해져서 화면을 그냥 바라만 보았네요. 18년이라는 정말 긴 세월 동안 차디찬 냉동고 속에 어머니의 유골함을 간직해 온 아들의 슬픔과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다가왔어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아직은 소외된 이웃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홍진세 경위님의 헌신적인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고요.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누구도 죽음에 익숙해지거나 그것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세상에서 나를 가장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었던 존재이자 내 삶의 시작점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내려앉는 공포이지요.
30대 중반이 되면 부모님은 대개 60대나 70대에 접어들게 되네요. 흰머리가 부쩍 늘어가고 주름이 깊어지며 예전만큼 활기차게 걷지 못하시는 모습을 문득문득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길한 예감과 슬픔이 피어오르곤 해요.
홍진세 경위는 인터뷰에서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정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 이러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네요.
나이가 서른을 넘고 사회적으로 한 사람의 몫을 온전히 해내고 있다고 해도 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것이 자식의 솔직한 마음이지요. 그렇기에 부모로부터의 완벽한 정서적 독립이란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는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서른다섯이 되든 마흔이 되든 어머니의 부재는 내 삶의 기둥 하나가 통째로 뽑혀 나가는 것과 같은 엄청난 충격일 테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지만 부모와의 이별은 그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인간은 결코 혼자서 모든 고통을 짊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네요.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반드시 타인의 위로와 사회적인 지지가 필요해요.
나는 준비가 됐나?
어머니의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끝에 도달한 결론은 결국 준비의 핵심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라는 점이네요. 우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이별을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잖아요. 어떤 장례식장을 고를지 어떤 행정적인 절차를 밟을지 같은 실무적인 준비는 미리 알아볼 수 있지만요.
부모의 사망을 온전히 준비할 수 있는 자식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이별이 조금이라도 덜 후회스럽도록 지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자주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해낼 수 있는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