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논설위원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지난 14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이번이 네번째 단식이다. 홈플러스가 일부 매장 문을 닫고 전환 배치를 약속했지만 휴업 하루 만에 고용 불가를 통보했다고 한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터라 단식과 오체투지로 급박한 처지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한쪽에선 1인당 수억원대 성과급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팽팽하고, 다른 한쪽에선 월 생계비 130만원에 허덕이는 신음 소리가 들린다. 같은 날 현실에서 벌어지는 부조리극이랄까. 인공지능 시대로의 전환기, 얼마나 더 많은 홈플러스를 지켜보게 될까, 긴급조정권이 아니라 긴급구제권을 발동할 순 없을까, 상상해본다.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자 이재용 회장이 등장했다. 이 회장은 16일 고객과 국민에게 사과한 뒤 임직원과 노조에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이라고 읍소했다. 이 회장 발언 이후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성과급 받아 서울에 집 사겠다’는 구성원들의 욕망과 ‘한 가족인 삼성인의 자부심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설득이 과연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삼성 노조의 쟁의 행태는 과거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문법과는 다르다. 왜 그럴까. 현재 파업을 주도하는 초기업노조는 출발 때부터 정치 투쟁과 상급 노조(양대 노총)를 반대하며 실리주의 독립 노조를 표방했다. 출범 초기 6천명이었던 조합원 수는 불과 1년여 만에 7만명으로 불어 절반이 넘는 최대 단일 노조가 됐다. 초기업노조의 세 확장은 경쟁사인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거액 성과급이 주된 동력이 됐다. ‘우리가 경쟁사보다 덜 받을 순 없다’며, ‘일단 실리주의가 강한 초기업노조에 모여 세를 불리자’는 정서로 급조된 조직화였다. ‘최대의 보상’이란 이해관계로 뭉친 터라 내부 이해 조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부문 중심으로 성과급 요구가 쏠리자 가전 등 비반도체 부문 조합원들이 이탈했고 고연차와 저연차 간 차등 보상 갈등이 거세졌다. 초기업노조 대표는 파업 손실 우려에 “설비 백업 등을 감안해 대략 30조원 정도로 보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기업의 미래에 개의치 않고 파업의 합법성을 강조한다.
내부에서도 연대가 부족하니 국민 눈높이는 더 기대하기 힘들다. 초기업노조 설립에 관여한 한 상급 노조 인사는 “이익단체일 뿐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라 보기 힘들다”고 진단한다. 어쩌면 이들에게 노조는 노동자의 연대 결사체라기보다는 이익 실현을 위한 법적 대리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대기업 노조가 오랜 기간 기업별 단체 교섭 구조에서 경제적 조합주의에 쏠려온 극단적 양태가 이번 삼성 파업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과 하이닉스뿐 아니라 ‘영업이익 △%’ 기준에 따른 성과 배분 요구는 다른 제조 대기업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노동계는 물론 정부와 기업 모두가 맞닥뜨린 전환기의 숙제다.
인공지능 산업의 초과 이익과 사회적 공유를 둘러싼 논의 또한 시급해졌다. 이 회장은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사회적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사과에 걸맞은 행동이 뒤따를진 알 수 없다. 기업과 노조, 주주의 선의에 기댈 일이 아니다. 공론화로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얼마 전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 산업의 호황으로 늘어날 초과 세수를 재설계하자는 제안을 했다. 단지 얼마간 빚내지 않고 넉넉히 예산을 짤 수 있다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김 실장의 제안도 이 지점에 닿아 있다. 초과 세수는 법적으로 쓰임새가 정해져 있다. 그렇게 일회성 예산으로 나눠 먹지 말고, 어디에 얼마나 쓸지 사회적 백가쟁명을 벌여보자고 했으니, 공론화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공법은 결국 공정한 과세다. 애초 우리 세제는 기업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류하는 수준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이익에 비례한 세금은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적 공유 수단이다. 고통 분담이 아니라 기회 배분을 위한 과세라는 점에서 갈등의 벽도 높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초과 이익의 기준을 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미 유럽 20여개국은 사회적 논의 끝에 기업의 초과 이익 기준을 법제화하고, 초과분 세수를 장기 자산화 해 국가의 미래 정책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 반도체의 기술 독점과 초과 이익이 얼마나 이어질진 알 순 없다. 다만, 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을 완화하고, 미래 투자와 안전망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심장이 쿵쾅거릴 일이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