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처음에는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각색의 경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논란이 커지는 과정을 보니 이제는 단순한 영화 비판을 넘어선 것 같아서 상당히 불편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배우 개인의 주거지까지 겨냥하고 영화제 일정이 안전 문제로 취소되는 상황까지 만들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당시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영화입니다. 실제 역사적 사건에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더한 작품인 만큼 영화 속 설정이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작진 역시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고요.
그런데 일부 보수단체의 대응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 보수단체 대표가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 집회를 신고한 데 이어 배우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곳의 위치가 드러나는 사진까지 공개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배우 개인의 집까지 찾아가 규탄하겠다는 건 영화에 대한 비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배우가 영화의 모든 내용을 직접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역사적 해석에 동의한다는 증거도 없는데 왜 배우 개인의 집까지 찾아가야 하는 건가요. 영화가 정말 역사 왜곡이라고 생각한다면 제작진의 설명을 요구하거나 평론과 토론, 법적 절차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면 됩니다. 굳이 개인의 생활 공간을 겨냥하는 순간부터 정상적인 비판의 선을 넘어선다고 봅니다.
결국 이런 과격한 움직임 때문에 영화 자체에 대한 논쟁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암살자(들)'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제작사가 최근 일련의 상황을 고려해 관객과 참석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판단하면서 개막식과 야외무대인사 등의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영화 논란 때문에 국제영화제 일정까지 안전 문제로 취소되는 상황이라니 정말 씁쓸합니다.
더 황당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네이버는 '암살자(들)' 관람평의 공감·비공감 과정에서 기계적인 어뷰징이 확인됐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중복 등록과 비정상적인 트래픽이 확인됐고, 이에 따라 네이버가 해당 영화의 기본 관람평 정렬 방식을 공감순에서 최신순으로 바꾸는 조치까지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부분은 수사를 통해 확인돼야겠지만, 최소한 플랫폼이 비정상적인 활동을 확인하고 수사를 의뢰할 정도의 상황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영화 관람평은 실제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남긴 평가를 참고하는 공간인데, 만약 조직적인 매크로를 이용해 특정 의견을 상단에 노출시키거나 반대 의견을 묻으려 했다면 일반 관객의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별점을 낮게 주고 자신의 의견을 남기면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평가까지 조작하려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여론을 통제하려는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역사와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더욱 토론의 기본적인 선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믿는 역사관과 다른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배우의 집을 찾아가고, 주거지 정보가 노출되고, 온라인 평가까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은 역사 논쟁의 정당성마저 스스로 훼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다룬 만큼 사실관계가 정확한지 따져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실제 역사와 허구가 섞이는 과정에서 관객이 사실로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 역시 비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우 개인을 공격하거나 신변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상황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일부 보수 진영의 과격한 대응도 정말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역사관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안전과 일상까지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영화에 대한 반론은 영화로, 역사적 반박은 자료와 근거로, 잘못된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해야 설득력도 생기는 것 아닐까요. 논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더 큰 목소리와 더 거친 행동이 아니라 더 정확한 근거와 논리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