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데 어떻게 엄벌 원하나"…관계성범죄 솜방망이 판결 원인은

모친 무차별 폭행해 죽인 남매 징역 7년·4년…"조카가 처벌 불원"

교제폭력 '우발성' 인정도 빈번…"피해자 진심이면 존중해야" 지적도

관계성 범죄 피해자들은 가족이나 연인인 가해자들을 위해 합의해주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 이영섭 김빛나 기자 = A씨 남매는 2024년 5월부터 70대 모친이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7일에는 모친이 바지에 소변을 보고 숨 쉴 때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며 주먹과 손바닥으로 머리 부위를 수차례 때렸다.

이후 사흘간 무차별적인 폭행이 이어졌다. 모친 입에 청테이프를 붙인 채 때리는가 하면, 쓰러진 모친에게 "일어나 밥을 하라"고 요구했으나 일어나지 못하자 발로 차기도 했다.

이들은 한겨울 모친을 마당으로 끌고 나와 30분간 방치해놓고 이후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수차례 때렸다. 옆구리를 걷어차고 등과 어깨를 밟기도 했다.

결국 모친은 12월 10일 오후 외상성 쇼크로 숨졌다.

재판에 넘겨진 남매는 존속폭행치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각각 징역 7년과 4년을 선고받았다.

1심은 모친의 유족인 조카가 남매의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남매가 모친과 일상적인 생활을 함께 누린 시간도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에 더해 "남매 스스로도 어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끝없는 자책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 점"이 유리한 양형 사유로 명시됐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최근 이런 판단에 오류가 없다고 보고 1심 형을 유지했다.

18일 취재를 종합하면 이처럼 존속폭행·가정폭력·교제폭력 등 '관계성 범죄'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관계 덕에 '솜밤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법조계에선 피해자와 가족 혹은 연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선처받아선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이런 양형이 부당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계성 범죄 가해자들이 무거운 처벌을 피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로 피해자의 선처 의사가 꼽힌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였던 만큼 결국 합의해서 처벌불원서를 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혜명의 오선희 대표변호사는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일 땐 피해자가 엄벌 탄원을 많이 하는데, 아는 사람이라면 탄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접해보면 마음속으론 엄벌을 바라면서도 실제로 법원에 의사를 표하긴 어려워하는 일이 적잖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제 폭력에서도 피해자가 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며 "초반에 상대방이 '빌면' 용서해주는 피해자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교제 폭력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가정폭력범이 가장인 경우 피해자가 생계를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선처를 호소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부장판사 출신 A 변호사는 "체감상 가정폭력 사건 열에 아홉은 피해자가 선처를 바란다고 한다"며 "경제활동을 하는 가해자가 구속되면 당장 돈이 끊기고, 자녀들이 주변에서 '부모가 감옥 갔다'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범행하는 존속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친자식을 엄하게 처벌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는 부모는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결국 가해자의 경각심을 떨어뜨려 범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A 변호사는 "'어차피 합의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폭행했다가 피해자가 합의해주지 않으면 격분해 더욱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제폭력 사건에선 우발성이 유리한 양형 사유로 적시되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피해자 대리 경험이 많은 이은의 변호사는 "법원이 '치정관계에서 이 정도 우발성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감정적으로 동요돼 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식으로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폭력은 습관"이라며 "예컨대 교제하던 연인이 다른 사람을 만나다 들켰을 때 감정적으로 격해질 순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때리거나 협박하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전주지법 형사합의12부는 연인에게 사생활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등 이용 협박)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이별을 통보받자 격분한 상태에서 다소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유리한 양형 사정으로 적시했다.

관계성 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수준은 데이터로도 유추할 수 있다.

리걸테크 업체 엘박스가 수집한 판결문 DB에 따르면, 올해 1∼9월 유죄가 선고된 스토킹처벌법 위반, 가정폭력처벌법 위반, 존속폭행 혐의 사건 1심 판결 총 2천58건 중 실형은 406건(19.7%)에 그쳤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840건(40.8%), 벌금형은 766건(37.2%)에 달했다.

법원 로고
[촬영 이율립]

다만 피해자의 선처 의사를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하는 게 무조건 잘못됐다는 시각은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가족이나 연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뜻을 재판부가 마냥 무시하는 것도 사법 정의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으로선 오히려 피해자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협박받아 내심의 의사와 다르게 합의해줬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스스로 판단했음이 확인되면 이를 존중해 양형에 반영하는 게 당연하다"며 "생계 문제나 이른바 '정' 때문에 용서해주는 것의 옳고 그름은 법원이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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