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꿈꾼 소년, 춤추고 노래하는 신부로…"실패 두려워 말길"

구로3동 성당 청소년 담당 보좌신부인 살레시오회 소속 이창민 신부

에세이 '누가 내 꿈에 수단을 입혔을까' 출간…"꿈 주인 바뀌었을 뿐"

'춤추고 노래하는 신부' 이창민 신부
[이창민 신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아이돌이 되고 싶어 대형 기획사와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렸던 소년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군대에 갔다가 만난 한 수녀님의 소개로 이태석 신부(1962∼2010)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아프리카 남수단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밴드를 만드는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눈물을 쏟으며 생각했다. '나의 끼와 재능을 나를 빛내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쓸 수 있구나.'

그렇게 화려한 무대 의상 대신 소박한 수단(사제복)을 입고, 무대 대신 제단에 서게 된 이창민 신부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누가 내 꿈에 수단을 입혔을까'(생활성서 펴냄)를 냈다.

책 출간에 맞춰 전화로 만난 이 신부는 "아이돌이 됐더라면 그것대로 행복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삶이 너무 좋기에 아쉬움은 전혀 없다.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꿈의 주인이 나에서 하느님으로 바뀐 것뿐"이라고 힘줘 말했다.

사실 순서를 따지자면 신부가 되겠다는 꿈이 먼저였다. 어린 시절 동네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사탕 2개를 받고 신부가 되겠다고 약속한 후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늘 신부님이 1지망이었다.

넘치는 끼를 주체할 수 없고 세상이 너무 재밌어 점점 후순위로 밀렸던 신부의 꿈은 이태석 신부의 다큐와 함께 다시 커졌고, 이창민 신부는 이태석 신부가 속했던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했다.

수도회 입회 후에도 방황은 한 차례 더 찾아왔다. 무대에 대한 미련, 박수에 대한 갈증 등으로 6개월 만에 짐을 쌌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알 수 없는 공포감과 이질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치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해 뛰쳐나갔다가 길바닥에서 퍼덕이는 물고기"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이 신부는 회고했다.

결국 이 신부는 편히 숨 쉴 수 있는 '물 속'과 같은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갔고, 신학교를 거쳐 2024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됐다고 모든 끼와 흥을 억눌러야 했던 건 아니었다. 서품식 후 새 사제들이 답가를 부르는 관례가 있었는데, 이 신부와 동기들은 경건한 성가 대신 가요 '질풍가도'를 택했다. 사제복을 입은 4명의 청년이 '너에게'를 '주님께'로 바꾼 '질풍가도'를 안무까지 곁들여 열창하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주목받으며, 이 신부는 예상치 못하게 유명인이 됐다.

살레시오회 소속 사제 이창민 신부
[이창민 신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엄숙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그래서 '질풍가도' 공연 전날 밤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진심이 전해지고 신자 분들도 너무 좋아하시니 보수적인 어른들의 시선도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후 춤과 노래는 이 신부 사목활동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현재 서울대교구 구로3동 성당 청소년 담당 보좌신부인 그는 춤과 노래로 젊은 신자들과 소통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MZ 신부'로 알려지며 초청 공연과 강연도 다니고, 방송 출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사제의 꿈과 무대의 꿈을 함께 이룬 것이라 이 신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라며 웃었다.

오디션에 떨어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던 기분, 6개월 만에 수도원을 나오기로 했을 때의 비참함 등 이 신부가 겪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청년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위로하는 데 좋은 무기가 됐다.

그는 "요즘 친구들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돈 많이 벌기'라는 식으로 대답하기도 한다"며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이끌려 사는 데 익숙해져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하면 좋은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친구들에게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하고 수없이 실패도 하라고 말해준다"며 "내가 겪은 모든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든 재료가 됐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수없이 경험하면 언젠가 좋은 가치가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당 학생과 챌린지 영상 찍는 이창민 신부
[이창민 신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젊은 사람들이 종교를 점점 멀리하는 시대지만, 구로3동 성당엔 타 성당의 청소년들까지 이 신부를 보러 오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함께 챌린지 영상을 찍자는 아이들도 많다.

이 신부는 "청년들은 삶이 힘들고 불안하니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만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이해가 간다"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그들의 문화 속에서 그들의 언어로 보여주는 것이 종교인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이 신부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회 기간 성당을 찾는 이들을 위해 작은 이태석기념관을 만드는 일에도 매진 중이다.

그는 "3년 전 포르투갈 리스본 WYD에서 받은 환대의 경험이 너무 강렬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모두 환호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내년 서울에서도 많은 청년들이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게 종교를 떠나 모든 분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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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영#oBcM
    2026.10.1807:56
    늘 기쁘게 율동하시던 신부님. 사제가 되는 길은 나를 포기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신부님의 말씀. 사제의 삶도, 수도자의 삶도, 평신도의 삶도 각자의 성소에 따라 살아간다고 하죠. 하느님께서는 지금의 저를 어떻게 브랜딩하시려는 걸까요?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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