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기여 땐 중동 사업 부담…기업 경영까지 ‘동맹 리스크’
3500억 달러 투자 이행도 숙제…재계 “사업성 넘어 외교 변수까지 고려”

미국의 안보·통상 압박이 동시에 거세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동맹 리스크’에 놓였다. 호르무즈 해협 군사 기여 요구에 응하면 중동 사업과 에너지 공급망의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 수 있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대미 투자와 관세·반도체 등 통상 현안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안보 변수가 기업의 투자와 공급망 전략까지 흔드는 구조다.
7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미 간 현안은 안보와 통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청와대도 최근 한미 협상과 관련해 “다양한 영역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치며 어떤 것은 정체 요인이 되기도 한다”며 투자 이슈와 반도체가 논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한미 안보 협상 역시 “진행되기 쉽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요구는 호르무즈를 넘어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로도 확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에 이란 관련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기억해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4일에는 한국이 국산 대공미사일 천궁-Ⅱ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산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안보 현안과 기존 통상 문제가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3500억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대미 금융투자를 약속했다. 2000억달러는 전략투자,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에 투입하는 구조다.
관세 협상 타결 이후에도 불확실성은 이어지고 있다. 양국은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수익성, 위험 분담 등을 조율하는 가운데 반도체도 한미 간 논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미 자동차·배터리·반도체·조선 등 주력 산업의 대미 투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상업적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은 신속한 투자 집행에 무게를 두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통상 변수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강제노동 제품 수입 금지와 관련해 한국을 포함한 60개 경제권을 무역법 301조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와 반도체 정책, 공급망 규제에 301조까지 더해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대미 투자를 확대하더라도 추가적인 정책 리스크를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대편에는 중동 리스크가 있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맞춰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면 이란과의 관계 악화가 국내 기업의 중동 사업과 에너지 조달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 중동 사업의 지정학적 위험을 고려해야 하고 반대로 군사적 기여를 최소화할 경우 한미 관계 악화가 통상 현안에 미칠 간접적인 영향을 경계해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동맹 비용’이 기업의 투자와 생산 전략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은 시장 규모나 첨단산업 생태계를 감안하면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면서도 “안보와 통상 현안이 서로 연계되기 시작하면 기업으로서는 사업성뿐 아니라 양국 관계까지 투자 변수로 고려해야 해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