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5명 중 1명꼴로 재직 중 성희롱 피해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 이상은 성추행·성폭력과 스토킹 피해 경험도 있다. 하지만 사안을 적극 해결하기 보다 참거나 모르는 척하면서 버티는 경우가 여전히 빈번했다. 가해자 분리·처벌 조치가 미흡하고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 등 2차 피해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6일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직장 내 성범죄 경험 및 2차 피해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에서 일하다 성희롱 피해를 입은 경험은 응답자의 20.3%, 성추행·성폭력 피해 경험은 15.4%로 나타났다. 스토킹 피해 경험했다는 응답도 13.9%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일부터 7일까지 전국 만 19살 이상 직장인을 상대로 온라인 조사로 진행됐다.
피해를 입어도 적극 해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성희롱 가해자는 주로 ‘임원이 아닌 상급자’(32.5%)와 ‘비슷한 직급 동료’(23.6%)였고, 성희롱 발생 장소(복수응답)는 회식 공간(46.3%)과 사내 업무 공간(39.4%), 외근·출장 공간(36%)으로 근무 중 발생했지만 회사나 노동조합에 신고하는 비율은 14.3%에 그쳤다. 대신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는 응답이 40.9%로 가장 높았고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는 응답은 22.2%였다. 회사를 그만둔 경우도 14.8%로 회사(14.3%)나 경찰,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 신고한 비율(5.9%)보다 높았다.
성추행·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3명 중 1명 꼴(33.1%)로 ‘개인 또는 동료와 항의했다’고 답했지만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비율(27.3%)이 두번째로 높았다. 회사나 노조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20.8%였다.
이러한 피해를 입어도 회사나 관련 기관 신고 등 적극적인 대처가 어려운 건 2차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직장 내 성범죄를 신고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경우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전체의 72.3%에 달했다. 여성 응답자(443명)로 한정할 경우 10명 중 8명(77%)이 2차 피해를 우려했다.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복수응답)로는 △가해자와의 분리·피해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37.2%)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바라보는 분위기가 있다(36.2%) △가해자에 대한 징계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30.2%) △회사가 피해자보다 가해자나 조직 평판을 더 우선시할 것 같다(27.4%) 등의 응답이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법·제도 보완과 조직문화가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남녀고용평등법)이 사업주에게 성희롱 예방·피해자 보호·가해자 징계와 불리한 처우 금지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이러한 조항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이유다.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스토킹방지법)도 ‘사용자가 직장 내 스토킹 예방을 위해 노력한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스토킹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갑질119는 “지금은 피해자 보호와 사건 조사 등이 각 사업장 내부 규정에 맡겨져 있어 혼란이 크고 사업장마다 대응 수준에도 차이가 발생한다”며 “사용자 조치 의무와 관련해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신당역 스토킹 사망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직위해제된 뒤에도 회사 내부 시스템을 이용해 피해자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라며 “피해자 정보 접근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의무화하는 등 스토킹과 관련한 조치 의무도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수진 노무사는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안전한 직장 복귀와 재발방지에 초점을 둔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사건을 처리할 때 사후 모니터링과 조직문화 진단을 반드시 병행하고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