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보안제도의 새로운 전환[MT시평/장항배]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전방위로 심화되면서, 국가 R&D(연구·개발) 성과물과 첨단 핵심기술을 지키는 일은 경제와 기술 주권을 좌우하는 최우선 전략 과제가 되었다. 주요국이 기술 보호 장벽을 높이는 가운데, 연구 현장을 겨냥한 인재 포섭과 은밀한 기술 탈취 시도도 갈수록 교묘하고 지능적인 양상을 띤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20일 시행되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 개정안은 우리 연구보안 체계의 실효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보안과제'와 '일반과제'의 이분법을 넘어 중간 단계인 '민감연구과제'를 신설해 3단계 체계를 구축한 데 있다. 엄격한 규제로 연구와 국제 교류가 위축되던 보안과제와, 보호 장치가 부족해 유출에 노출되던 일반과제 사이에서 그동안 마땅한 관리 수단이 없었다. 민감연구과제는 경제적·기술적 가치가 큰 성과물을 합리적 울타리 안에서 보호, 연구의 개방성과 자율성은 지키면서도 유출은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정밀한 보안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개정안은 연구보안의 책임을 연구자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기관 차원의 상시 거버넌스를 갖추도록 했다. 출연연 전체와 연간 300억 원 이상을 지원받는 대학에 보안대책 수립, 보안관리심의회 운영, 보안책임자 지정을 의무화했다. 특히 외국인 연구자의 참여 기준, 장기 해외 체류 연구원 관리, 국외 수혜 정보와 비공식 접촉 신고 체계까지 구체화한 점은 현장 중심의 실질적 보안 체계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도의 완성 못지않게 본질적인 과제는 연구 현장 전반의 '연구보안 의식'이다. 아직도 연구보안을 번거로운 행정업무나 연구를 제약하는 규제로 여기는 인식이 남아 있다. 연구자가 자신의 성과물을 국가의 안보 자산으로 바라볼 때 연구보안은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연구지원인력도 규정 집행자를 넘어 연구 자산을 함께 지키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대학도 형식적인 서약서 징구에서 벗어나 사례 중심의 맞춤형 교육과 우수·실패 경험 공유로 보안 문화가 연구실 단위까지 스며들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새 제도가 안착하려면 자발적 실천을 뒷받침하는 유인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연구실 안전관리비처럼 연구보안 관리비를 간접비에서 일정 비율 이상 '지정'하거나 직접비 인건비에 반영해 실질적 예산 집행을 뒷받침할 만하다. 전담 인력 배치를 지원하고, 보안 수칙을 성실히 이행한 연구자에게 연구수당 지급이나 과제 평가 가점 같은 혜택을 더한다면 자발적 참여의 실질적 동력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보안은 성과물만이 아니라 그 성과를 일군 연구자를 지키는 일이다. 규정을 제대로 몰라 선의의 연구자가 의도치 않게 기술을 유출하거나 제재 대상이 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촘촘한 보안 체계와 충분한 교육은 이런 뜻밖의 피해를 막아준다. 나아가 연구보안은 국가와 연구자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지식 자산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지키는 방어선이다. 연구보안은 연구의 자유를 가로막는 족쇄가 아니라, 연구자와 그 성과, 국가의 소중한 자산을 함께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장항배 중앙대 교수

조회 65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