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 루주 정권 시절 캄보디아의 S-21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살아남은 화가 보 멩이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S-21에 수감됐던 약 2만 명 가운데 1979년 베트남군이 수용소를 해방했을 당시 살아남은 사람은 단 12명뿐이었고, 보 멩은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던 보 멩은 크메르 루주에 의해 체포된 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게 됐습니다. 폴 포트와 마오쩌둥, 김일성 등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맡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내와 두 자녀를 잃었습니다. 아내는 그와 함께 체포된 뒤 다시 만나지 못했고, 두 아이 역시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권이 무너진 뒤 보 멩은 자신이 직접 겪고 목격한 일을 그림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2009년에는 S-21 소장인 깡 겍 이어우의 전범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서 당시의 참상을 증언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말로는 사라질 수 있었던 역사를 그림과 증언으로 남긴 역사적 증인이 됐습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역사라는 게 결국 교과서에 적힌 숫자만으로 남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170만명, 220만명이라는 숫자도 엄청나지만 그 안에는 보 멩처럼 이름과 가족과 삶이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존재했던 거잖아요.
특히 보 멩이 살아남은 뒤 그림으로 그때의 참상을 계속 남겼다는 게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원래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가 된 그림으로 자신이 겪은 역사를 증언하게 된 셈이니까요.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도 첫 아내의 작은 초상화를 지갑에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너무 먹먹합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반드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그림과 증언으로 남겨줬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직접 겪은 사람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결국 기록만 남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런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야 할 기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