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의 한 목욕탕이 남성 고객에게는 수건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여성 비회원 고객에게만 500원의 요금을 별도로 받았던 사건, 다들 한 번쯤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이 사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철퇴를 내리면서 표면적인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자영업자들의 눈물겨운 현실을 들여다보면 결코 목욕탕 업주만을 탓할 수 없는 복잡한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권위의 매서운 질타, 원칙적으로는 백번 타당한 결정
국가인권위원회의 논리와 판단은 원칙적으로 매우 타당합니다. 인권위는 수건 회수율이 낮다는 업주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이는 일부 이용객의 일탈일 뿐이며, 이를 근거로 모든 여성 고객에게 추가 비용을 떠넘기는 것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일반화에 따른 부당한 차별이라고 매섭게 지적했습니다.
또한 보증금을 받거나 공용 비누를 설치하는 등의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성별만을 기준으로 요금을 달리한 점을 꼬집으며, 해당 목욕탕과 지자체에 시정 및 관리 감독을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인권의 관점, 그리고 선량하게 목욕탕을 이용하다 졸지에 잠재적 절도범 취급을 받으며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다수 여성 고객들의 억울한 심정을 생각한다면 백번 지당하고 마땅한 조치입니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현실, 벼랑 끝에 선 소상공인의 눈물
하지만 우리가 렌즈의 초점을 '영세 소상공인의 생존'이라는 현실로 조금만 옮겨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게 됩니다. 목욕탕 측은 여탕에서 수건 분실이 유독 빈번하게 발생하여 재구매에 따른 금전적 손실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간절하게 항변했습니다.
실제로 목욕탕 업계 종사자들의 뼈아픈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남탕과 여탕의 수건 회수율 차이는 결코 과장된 엄살이 아닙니다. 남탕의 경우 집에서 가져온 수건마저 두고 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여탕에서는 막대한 양의 수건이 끊임없이 사라져 주기적으로 엄청난 교체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자 가장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동네 상권에서 팍팍한 마진으로 근근이 버티는 영세 목욕탕 업주들에게, 매달 뭉텅이로 사라지는 수건은 단순한 비품 손실을 넘어 가게의 존폐 자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적자로 직결됩니다.
인권위가 고상하게 제시한 보증금 제도 등의 대안들 역시 현장에서는 공허한 탁상공론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수건 보증금을 일일이 걷고 내어주거나 이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카운터에 추가적인 인력이 필요하며, 이는 곧 인건비 상승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현실적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업주 입장에서는 '일부의 잘못을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한다'는 거창한 인권 침해의 의도보다는, 당장 내일 닥칠 끔찍한 적자를 어떻게든 틀어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 앞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원칙을 지키다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에게, 무조건적인 평등의 잣대만을 들이밀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지 우리는 무겁게 되물어야 합니다.
진짜 비난받아야 할 대상, 얄팍한 양심이 낳은 끔찍한 나비효과
이 서늘한 딜레마의 진짜 원흉은 목욕탕 업주의 삐뚤어진 성차별 의식이 아닙니다. 공공재와 다름없는 목욕탕 비품을 자신의 사유물인 양 아무런 죄의식 없이 슬쩍 챙겨가는 일부 비양심적인 얌체 이용객들의 처참한 시민 의식이 바로 모든 문제의 썩은 뿌리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적인 일탈이 겹겹이 쌓여 업주에게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히고, 벼랑 끝에 몰린 업주는 생존을 위해 일괄적인 규제와 과금이라는 고육지책을 꺼내 듭니다. 그리고 그 씁쓸한 결과는 고스란히 규칙을 묵묵히 지키는 선량한 다수 시민들의 불쾌감과 억울한 비용 부담으로 돌아오는 끔찍한 악순환입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차별을 자행한 악덕 업주에 대한 인권위의 통쾌한 철퇴'로만 가볍게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성숙한 공중도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관리의 편의성 뒤에 숨어 부당한 관행을 낳은 업주의 선택도 아쉽지만, 그런 극단적인 방어책을 강요하게 만든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향해 더욱 매서운 사회적 질타가 쏟아져야 할 때입니다.
더 나은 사회는 완벽한 법과 제도의 억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용 물품을 아끼는 아주 작고 기본적인 양심이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지켜질 때, 비로소 불필요한 차별 논란과 억울한 피해자가 사라지는 진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