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았다는 것 보여드리겠다" 눈물로 결의 다진 한국 레슬링

안한봉 감독, 나고야 AG 미디어데이서 눈물 "더는 물러설 자리 없다"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 레슬링,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남다른 결의

레슬링 안한봉 감독의 포효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레슬링 국가대표 안한봉 감독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며 포효하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진천=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더는 물러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 레슬링…."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대표팀 안한봉 감독은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레슬링 대표팀 미디어데이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고 각오를 밝히던 중 말을 잇지 못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안한봉 감독의 눈이 붉게 충혈되더니 눈물이 떨어졌다.

잠시 눈가를 훔친 안 감독은 핏대를 세우며 "애국 열사들은 태극기에 혈서를 써가며 가족을 버리고 독립운동 했다"며 "우리 선수들도 한국 레슬링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달라! 파이팅!"이라고 소리 질렀다.

발언하는 김익헌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김익헌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이날 레슬링 대표팀의 미디어데이는 단순히 대회 목표를 제시하고, 선수들을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한국 레슬링의 추락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시 일어서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리였다.

행사에 참가한 레슬링인들은 한국 레슬링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결연한 각오를 밝혔다.

김익헌 대한레슬링협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레슬링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혈안이 됐고, 지도자들은 안이하게 대처했으며, 선수들도 정신적으로 무너져있었다"며 냉정하게 자성했다.

이어 "우리는 다시 일어서겠다고 말을 되풀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슬링 안한봉 감독의 눈물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레슬링 국가대표 안한봉 감독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레슬링의 부활을 독려한 건 레슬링인들만이 아니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탁구 레전드' 김택수 진천선수촌장은 "과거 함께 대표팀 생활을 했던 레슬링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며 "어떤 종목보다 강한 정신력과 투혼이 필요하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쓰러져달라. 매트에서 쓰러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독려했다.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엄숙함을 넘어 결연했다.

안한봉 감독의 눈물을 본 일부 선수들은 따라서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국가대표다'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레슬링 국가대표 김민석(오른쪽)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 공개 훈련 도중 숨을 고르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한국 레슬링은 이날 행사 분위기처럼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친 뒤 2023년에 개최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동메달 2개를 따내는 데 그쳤다.

한국 레슬링이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도 따지 못한 건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57년 만이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전망도 그리 밝진 않다.

레슬링 대표팀은 이번 대회 목표를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6개로 잡았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깝다.

대한레슬링협회가 이날 발표한 아시안게임 전망 자료에 따르면, 항저우 대회 동메달리스트인 정한재(수원시청)가 남자 그레코로만형 67㎏급 금메달 후보로 꼽히고, 항저우 대회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급에서 동메달을 딴 김민석(수원시청)이 은메달에 도전한다.

노영훈(울산광역시남구청)은 남자 그레코로만형 77㎏급 동메달 후보로 거론된다.

이밖에 남자 자유형 65㎏급 윤준식(삼성생명), 125㎏급 김관욱(수원시청), 여자 자유형 50㎏급 천미란(삼성생명), 53㎏급 박서영(전남광주남구청), 57㎏급 권영진(삼성생명)이 동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레슬링 국가대표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에서 공개 훈련을 하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그러나 대표팀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한재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친 오른쪽 팔꿈치 골절 부상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김민석 역시 왼쪽 가슴 근육 파열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노영훈은 아시안게임에 처음 출전해 경험이 부족하다.

약세 종목인 남녀 자유형에서는 메달 획득을 위해 이변이 필요한 상황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한국 레슬링은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 1∼2개를 따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초대형 타이어를 들어라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레슬링 국가대표 정한재(왼쪽 첫번째)와 김민석(왼쪽 두번째)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에서 공개 훈련을 하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그런데도 레슬링인들은 강한 정신력과 투혼으로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이를 한국 레슬링 부활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김익헌 회장은 메달리스트를 위한 이색적인 포상도 내걸었다.

메달 포상금과 별도로 일명 '돼지고기 세트 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대한레슬링협회는 "이번 대회 금메달리스트에겐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전까지 2년 동안 매달 돼지고기 세트를 보내주고 은메달, 동메달리스트에겐 1년 치를 선물할 것"이라고 전했다.

축산물 전문 가공 업체 상주약감포크의 대표이기도 한 김익헌 회장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 지원이다.

눈물 닦는 김민석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레슬링 국가대표 김민석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 질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선수들의 각오는 대단하다.

안한봉 감독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민석은 "말이 잘 안 나온다. 감정이 올라온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한재 역시 "여기 있는 모든 선수가 감독님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꼭 금메달을 따서 한국 레슬링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레슬링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선전을 다짐하는 의미로 2024 파리 올림픽 노메달 수모 직후 각오를 적은 태극기를 꺼내 들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레슬링을 부활시키겠다는 결의를 태극기에 적었다.

이후 국제대회마다 이 태극기를 가지고 다니고 있다.

김민석은 "금메달을 따서 이 태극기를 몸에 감싸는 세리머니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기념촬영하는 레슬링 국가대표
(진천=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19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6.8.19 ksm7976@yna.co.kr

한편 남자 자유형 대표팀은 이재성 코치 체제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다.

기존 A 감독은 불미스러운 일로 징계받았고, 국민권익위원회와 대한레슬링협회, 대한체육회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복귀하지 못했다.

cycle@yna.co.kr

조회 24,555 스크랩 0 공유 1
댓글 6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보러가기 (6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