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다인 1억불의 경고···K-로봇, 반도체 체인 타야 산다

(그래픽=AI 활용)
(그래픽=AI 활용)

미국의 글로벌 협동로봇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테라다인 로보틱스가 올해 2분기 사상 처음으로 단일 분기 매출 1억달러(약 1300억원)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3% 급증한 이번 매출 성과는 글로벌 자동화 경기 회복의 지표로 해석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실적이 하드웨어 중심의 가격 경쟁력에 치중해 온 국내 로봇 업계에 소프트웨어 중심의 구조적 체질 개선이 시급함을 시사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실적의 핵심 배경은 단순한 로봇 판매 확대를 넘어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과 맞물려 있다.

테라다인 그룹의 주력인 AI 반도체 검사 장비 사업이 엔비디아 공급망을 타고 호황을 맞이하자,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를 제조·포장하는 첨단 공장 증설이 대거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유니버설 로봇(UR)의 협동로봇(사람과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로봇)과 모바일 산업 로봇(MiR)의 자율주행 물류 로봇이 해당 공장들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함께 선택받으며 성장 모멘텀을 얻었다.

기존의 주요 무대였던 자동차 공장을 넘어 ‘AI 반도체 패키징 및 첨단 전자제품 조립 라인’이 새로운 핵심 시장으로 가세한 결과다.

실제로 이번 분기 반도체와 전자 공정 분야에서 두 자회사의 로봇 도입이 눈에 띄게 증가하며, 로봇 부문 사상 첫 분기 매출 1억달러 돌파를 견인했다.

10일 로봇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테라다인의 이번 호실적은 로봇과 AI의 결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글로벌 선두 기업들이 AI 연동 기술과 공급망 지배력을 무기로 진입 장벽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두산로보틱스, 레인보우로보틱스, 한화로보틱스 등 관련 국내 업체 역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 고도화가 하반기 핵심 과제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올해 상반기 국내 로봇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은 글로벌 수준에 맞춰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가격 경쟁 중심에서 벗어나 로봇을 스스로 판단하고 제어하는 지능형 설루션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시장 경쟁력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 현대차, 한화 등 대기업이 구축하는 글로벌 첨단 공장 공급망에 핵심 장비와 로봇을 연계해 공동 진입하는 전략이 주요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내 선두 주자인 두산로보틱스의 경우, 북미 시장과 고중량 라인업을 중심으로 테라다인과 가장 직접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 중이다. 

지난달 24일 발표된 두산로보틱스의 올해 2분기 매출액은 176억74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0% 급증했으나, 영업이익은 144억1700만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가 이어졌다.

지난해 인수한 북미 물류 자동화 기업 원엑시아(ONExia)의 실적이 반영되고 미국 제조 공장의 포장·팔레타이징(EOL) 부문 매출이 130% 증가하면서 북미 매출 비중을 53%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지만, AI 인력 채용과 인프라 확장 등 선제적 투자 비용이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테라다인의 고중량 협동로봇(UR20·UR30)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산의 H·P시리즈와 경쟁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글로벌 자동화 수요 회복 국면에서 격차를 좁히기 위한 수익성 개선이 향후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테라다인의 반도체 인프라 기반 로봇 확장 방정식을 한국 시장에 이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오는 19일경 2분기 실적 공시를 앞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2분기 매출 전망치는 약 120억원 안팎으로, 지난 1분기(90억원)에 이어 이번 2분기에도 전년 대비 8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신제품 연구 개발 비용 탓에 당장 이번 분기 이익은 본전(손익분기점) 수준이거나 소폭 적자가 점쳐지지만, 시장에서는 지난 6월 말 완공된 세종 새 공장 가동과 삼성전자의 로봇 조직 신설에 따른 시너지로 올해 전체 실적은 흑자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테라다인이 반도체 장비 사업의 강력한 영향력을 앞세워 자회사들의 협동로봇 판매를 늘린 것처럼, 레인보우로보틱스 역시 삼성 반도체 생산 라인 무인화에 이동형 양팔 협동로봇(RB-Y1)을 대거 공급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화로보틱스 역시 체질 개선을 위한 시험대에 섰다.

비상장사인 한화로보틱스는 이달 중순 한화의 반기보고서를 통해 2분기 실적이 간접 공개될 예정으로, 시장은 매출 35억~45억원 선, 영업손실 50억~70억 원대로 적자가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로보틱스는 신설 지주사 한화M&S 체제 하에서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며 실적 개선의 발판을 마련 중이다.

특히 기존 강점인 푸드테크 시장을 한층 강화하는 동시에, 테라다인의 대형 협동로봇에 맞서기 위해 가반하중(로봇이 들어 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 32kg급 신제품(HCR-32)을 준비하며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대형 산업 공정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아울러 한화모멘텀 등 그룹 내 제조 장비 사업과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 및 이차전지 공정 공급망에 로봇을 연계 진입시키는 전략을 구체화하며 하반기 흑자 전환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국내 주요 로봇사들이 대기업의 전방 산업 공급망과 결합해 활로를 모색하는 움직임은, 로봇이 더 이상 단순한 단품 기계가 아니라 빅테크 자본이 몰리는 ‘AI 인프라 장비’ 자체로 진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소프트웨어와 AI 역량이 결합되지 않은 하드웨어 중심의 판매 방식은 결국 중국산의 초저가 치킨게임에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한 테라다인은 이러한 기술 격차를 굳히기 위해 하반기 더욱 공격적인 무인화 및 AI 기술 인프라 내재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테라다인은 이번 실적 발표에서 반도체 칩을 포장해 완제품으로 만드는 ‘AI 반도체 후공정 시장’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사람처럼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차세대 비전 AI 기술을 엔비디아와 공동 연구개발(R&D)하기로 하고 투자를 확대한다.

또한 기존 반도체 검사 장비의 높은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고객사의 공장 증설 과정에서 자회사(UR, MiR)의 협동·물류 로봇 도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통합 자동화 시장을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대응해 국내 로봇 3사 역시 하반기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방위적 반격에 착수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자사 로봇의 스마트폰 운영체제(OS) 같은 독자 소프트웨어를 외부에 과감히 개방하는 플랫폼 전략과 글로벌 유통망 확장을 통해 선두 주자인 테라다인 자회사(UR)를 매섭게 추격 중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와의 강력한 지분 동맹을 발판 삼아,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을 개발하며 쌓은 정밀 제어 기술력을 최첨단 반도체(HBM 및 미세 공정) 생산용 로봇으로 완벽히 이식하겠다는 각오다.

한화로보틱스 또한 강점인 푸드테크 경쟁력과 더불어 고중량 로봇 라인업 재편을 서두르고 있으며, 그룹사 생산 인프라를 활용한 협력 전략을 가속화 중이다.

국내 로봇공학계 한 관계자는 “테라다인이 사상 최고 실적을 낸 원동력은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고도의 제어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점했기 때문”이라며 “하드웨어 단가 싸움에 치중해 온 국내 기업들도 체질 개선이 시급하지만, 대기업의 소극적인 투자와 인력 한계로 당장 그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고 짚었다.

이어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쥐려면 대기업이 처우 개선을 통해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재 생태계부터 구축해야 한다”면서 “여기에 대기업 공장의 적용 실적(레퍼런스) 확보와 정부의 중소기업 자동화 지원이라는 삼박자가 맞물려야만 중국산 저가 공세를 뚫고 진정한 도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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