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대표팀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지만, 중국 기업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중국이 팀 없이 월드컵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샤오위 위안 미국 뉴욕대학교 교수는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중국은 대표팀 없이도 월드컵 어디에나 존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에서 온 아버지와 함께 미국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 에콰도르의 조별리그 경기를 관람하던 중, 경기보다 더 눈에 띈 것은 경기장 곳곳에 자리한 중국 기업들의 로고였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기업은 중국 가전업체 하이센스(Hisense)다. 심판이 비디오 판독(VAR)을 위해 경기장 모니터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대형 스크린은 하이센스가 공급했다.
중국 IT 기업 레노버(Lenovo)는 FIFA의 공식 기술 파트너로 이번 대회에 태블릿과 노트북 등 1만7000여 대의 기기를 제공했다. 48개 참가국 대표팀 모두 레노버의 축구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활용해 경기력을 분석했다.
개막식에서는 중국 완구기업 팝마트(Pop Mart)의 대표 캐릭터 '라부부(Labubu)'가 대형 퍼포먼스를 펼치며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위안 교수는 이러한 영향력이 전통적인 정치 선전과는 다른 형태의 '소프트파워'라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들이 월드컵 같은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의 핵심 인프라를 담당하면서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중국 기술과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심판 판정, 경기 데이터 분석 등 대회 운영의 핵심 영역에서 중국 기술이 활용되는 모습은 "세계가 이제 중국 기술 위에서 돌아간다"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심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랫동안 추진했던 '축구 굴기'와는 다른 방식의 성과라는 분석도 내놨다.
시 주석은 2011년 중국 축구의 목표로 월드컵 개최, 월드컵 본선 진출, 월드컵 우승을 제시했지만, 중국 남자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여섯 차례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세계적인 대표팀 육성에는 실패한 반면,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스포츠 무대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안 교수는 일본의 사례도 언급했다. 1980~2000년대 월드컵에서 소니(Sony), 파나소닉(Panasonic) 등 일본 전자기업들이 경기장을 장식하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듯, 중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러한 영향은 더욱 크다고 진단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 미국인은 기성세대보다 중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인식을 보였다. 위안 교수는 쉬인(Shein), 틱톡(TikTok), 라부부 등 중국 브랜드와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접한 경험이 이런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월드컵에서 중국 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경험 역시 같은 흐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월드컵에서 우승팀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브랜드와 기술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했다"며 "중국 대표팀보다 중국 기업들이 더 큰 소프트파워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