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의 국가 표준 및 품질 인증을 총괄하는 인도 표준국(BIS)이 800kV(킬로볼트) 이상 초고압 변압기에 대한 에너지 효율 라벨링 규제를 기습 시행했다.
이에 따라 인도 800kV 초고압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초고압 차단기)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는 효성중공업의 향후 행보에도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조치가 변압기 관련 규제임에도 업계 긴장감이 도는 이유는 초고압 전력망 사업의 발주 구조 때문이다.
통상 초고압 변압기와 차단기는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수출되는 경우가 많아, 변압기 수출길이 막히면 주력 제품인 차단기 공급까지 연쇄적으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인도 정부의 기습적인 수입 변압기 규제로 인해 효성중공업이 주력하는 전력기기 전반의 수출 장벽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사측은 이번 규제 대상인 초고압 변압기의 인도향 수출 물량이 사실상 없어 실질적인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20일 전력기기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각) 800kV 이상 초고압 변압기에 새로운 에너지 효율 규격(IS 17115:2026 Part 2)을 도입한다고 공포하고, 바로 다음 날인 15일부터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 규제는 인도에 수입되는 모든 초고압 변압기에 가전제품처럼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 라벨을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하는 제도다.
인도 정부가 제시한 까다로운 효율 기준을 충족해 인증 마크를 받지 못하면 현지 유통이나 통관 자체가 원천 차단된다.
국제 무역 규제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무역기술장벽 통보를 거쳐 수개월의 유예기간을 주는 것이 관례이나 이번 조치는 단 24시간 만에 발효되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규제가 단순한 라벨 부착을 넘어, 변압기 시험 데이터를 인도 표준국(BIS) 온라인 플랫폼과 실시간 연동하도록 강제했다는 점이다.
이번 전산망 연동 의무화는 단순한 서류 절차가 아니라 전산 검증을 완료하기 전까지 제품 출하를 원천 봉쇄하는 강력한 규제로 작용한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인도의 새 규격에 맞춘 전산 시스템 개편과 정상 작동 검증이 선행돼야 통관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향후 시스템 오류나 승인 지연 발생 시 수출길이 수 주간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효성중공업이 이번 조치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향후 규제 확대 가능성에서 기인한다.
현재 효성중공업은 인도 800kV 이상 초고압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초고압 차단기)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자국 제조업 보호 기조를 강화하며 핵심 전력 장비의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만큼, 효성의 독점적 주력 품목인 초고압 차단기 영역까지 규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리스크가 대두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숨은 의도로 자국 제조업 보호와 외산 기업에 대한 현지 투자 압박을 꼽는다.
인도는 국가 전력망 현대화 과정에서 지난 2020년부터 중국산 장비를 철저히 배제해 왔으나 최근 전력망 구축 지연이 심화되자 올해 들어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등 국익에 따른 실리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800kV 이상 초고압 영역에 대한 기습 규제 역시 외산 완제품의 진입 장벽을 높여, BHEL 등 인도 전력 장비 업체들의 기술 추격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효성중공업은 현재 푸네 현지 공장을 통해 초고압 차단기(GIS)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 내 생산 시설은 이 차단기 공장이 유일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향후 규제가 초고압 차단기 등 전력 장비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규제 기준을 맞추기 위한 현지 공급망 정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도 정부는 자국 제조업 육성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앞세워 부품 국산화 비율을 강제하고 있는 데다, 과거에도 변압기 규제를 선제 도입한 이후 차단기 품목으로 제도를 확대했던 전례가 있다.
실제로 인도는 앞서 변압기 규제 틀을 다진 이후, 지난 2020년 저압 차단기 품질관리명령(QCO)을 도입한 데 이어 2024년 8월에는 가스절연개폐장치(GIS)를 포함한 고압 차단기 전반에 강제 인증제(BIS Scheme X) 도입을 전격 공포하기도 했다.
비록 올해 초 업계의 반발 등으로 해당 행정명령을 최종 철회하긴 했으나, 전력 장비 국산화를 위해 언제든 규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 사례로 거론된다.
업계는 인도 정부의 이러한 현지화 압박 속에서 효성중공업이 기존에 확보한 시장 지위와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인도 푸네 지역을 중심으로 800kV급 초고압 차단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켜왔으며, 지난해 9월 발표한 푸네 공장 증설 투자가 올해 본격화되면서 차단기 품목의 현지화 기반을 더욱 다지고 있다.
국내 전력기기업계 한 관계자는 “인도의 규제가 향후 효성의 주력 제품인 초고압 차단기까지 확대된다면 인증을 담당할 현지 검사 기관의 인프라 부족으로 심사가 줄줄이 밀릴 수 있다”며 “인도 특유의 느린 행정 절차까지 겹칠 경우, 현지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두고도 제때 납품하지 못해 공장에 발이 묶이는 출하 지연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향후 규제 리스크가 커지지 않으려면 회사가 구축해 둔 현지 생산 생태계를 단순한 제조 시설을 넘어 완벽한 현지 공급망 거점으로 안착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효성중공업 측은 “인도 법인은 초고압 차단기 생산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이번 규제 대상인 초고압 변압기는 현지 수출 물량이 없어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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