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은 오래전부터 사라져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함께해 왔다. 그러나 예술이 남기는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그 순간이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증명하는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진과 회화가 품는 시간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사진은 한순간의 현실을 포획하지만, 그 순간이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증명하는 매체이며, 회화는 존재했던 시간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구성하는 매체다. 이러한 서로 다른 시간의 감각이 하나의 공간에서 교차한다.
사진작가 안부와 회화작가 배지인의 2인전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더라도’가 17일부터 8월 24일까지 갤러리 에이치플럭스(H-flux)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송정원 시인의 ‘반대편에서 만나’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더라도 관통해본 사람은 어디든 존재하는 법을 알게 될 테니"라는 구절에서 가져왔다. 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과 기억, 상실의 감각을 탐구하며, 서로 다른 시간성이 어떻게 하나의 현재 안에서 공명하는지를 보여준다.

안부의 사진이 사라짐을 예감하는 감각을 응축한다면, 배지인의 회화는 이미 사라진 시간을 현재의 경험 속에서 다시 생성한다. 하나는 미래의 상실을 향해 열려 있고, 다른 하나는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는 점에서 두 작업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시간을 이동하지만, 결국 현재라는 동일한 지점에서 만난다.

이러한 구조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durée)'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가 분리된 직선적 흐름이 아니라 기억이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갱신되는 연속체라는 것이다. 또한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기억의 파편'처럼, 과거는 완결된 역사가 아니라 현재와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안부와 배지인의 작업 역시 과거를 복원하거나 현실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기억이 현재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를 시각적으로 실험한다.
안부의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기록사진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눈앞의 사건보다 사라짐이 남긴 기척과 공기, 그리고 침묵에 머문다. 사람이 떠난 공간의 적막, 오후의 희미한 햇살, 물결 위에서 흩어지는 빛처럼 쉽게 지나쳐 버릴 풍경은 그의 렌즈를 통해 미세한 감정의 흔적으로 변모한다. 화면 속에는 분명한 사건도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어 있음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저마다의 기억을 투영하게 만든다. 작가는 대상을 선명하게 고정하기보다 소멸 직전의 감각을 붙잡으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장 연약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유예시킨다.
특히 최근 연작은 아카이브와 현재의 이미지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기억의 선형성을 해체한다. 과거의 가족사진 위에 오늘 촬영한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행위는 과거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기억이 현재의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해석되는 과정 자체를 드러낸다. 이는 회화를 기억의 저장소가 아닌 기억이 생성되는 현장으로 전환시키는 실험이라 할 수 있다.

배지인의 회화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다시 호출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버지가 남긴 가족사진과 유년의 풍경은 그의 화면에서 그대로 복원되지 않는다. 기억의 왜곡과 감정의 축적을 거치며 인물은 흐릿해지고 공간은 해체되며 새로운 색채의 층위로 재구성된다. 특히 최근 작업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현재의 해와 나무 이미지를 오래된 가족사진 위에 중첩시키며 서로 다른 시간대를 하나의 화면 안에서 병치한다.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선으로 기억을 다시 쓰는 과정이며, 기억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살아 있는 경험임을 보여주는 회화적 실험이다.
두 작가의 작업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동일한 질문으로 수렴한다. 사라진 것은 과연 어디에 머무르는가. 안부는 아직 오지 않은 상실의 예감을 응시하고, 배지인은 이미 지나간 시간을 현재의 풍경 속으로 다시 불러낸다. 하나는 미래를 향한 감각을, 다른 하나는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두 작업 모두 시간은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중첩되고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만남은 사진과 회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가 지닌 시간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진이 현실의 한순간을 붙잡는 기록의 매체라면, 회화는 기억을 해석하고 다시 생성하는 매체다. 이번 전시는 기록과 재구성이라는 두 방식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새로운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제안한다. 시간은 더 이상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기억과 감각이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는 동시대 미술이 기억을 다루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오늘날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적극적인 행위로 이해된다. 과거는 고정된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 안부와 배지인의 작업은 이러한 기억의 유동성을 사진과 회화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시각화하며, 상실 또한 결핍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시간으로 읽어낸다.
관람객은 전시장 안에서 타인의 사적인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자신의 기억과 상실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은 특정한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 각자의 삶 속에 축적된 시간들을 조용히 호출하며, 기억이 개인을 넘어 타인과 연결되는 공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도 기억과 상실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각을 통해 하나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시는 섬세하게 드러낸다.

결국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더라도’는 기억을 회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시간을 사유하는 전시다. 안부의 사진은 사라짐 이전의 침묵을 응시하고, 배지인의 회화는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변형되는 기억의 생명력을 탐색한다. 기록과 재구성, 부재와 현존, 과거와 미래라는 상반된 시간의 층위는 전시장 안에서 하나의 현재로 수렴된다. 관람객은 타인의 기억을 바라보다가 결국 자신의 시간과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상실은 결핍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번 전시는 기억을 보존하는 예술을 넘어, 시간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질문하는 동시대적 사유의 장으로 기능한다.
한편 전시 기간 중인 24일 오후 7시에는 송정원 시인이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려 전시 제목의 출발점이 된 시와 작품 세계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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