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모으자, 마을의 일이 보였다

지난 2일 오전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2리 마을회관 앞 집하장에서 ‘모아짱’과 ‘모아지기’들이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나누고 있다. 모아짱은 차가 없거나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 사는 가구의 생활 쓰레기를 거두며, 모아지기들은 집하장에서 분류와 관리를 맡는다.

지난 2일 오전 7시50분, 최종화(74)씨가 차에 올랐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2리 아랫마을인 4~6반까지 도는 날이다. 최 씨는 차가 없거나 거동이 불편해 쓰레기를 직접 내놓기 어려운 집들을 찾아다니며 쓰레기를 거둔다. 그는 한 집 앞에 봉투가 보이지 않자 전화를 걸었다. 허리가 아파 침을 맞으러 나왔다는 답을 듣고서야 다음 집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봉투가 많은 집에서는 주말에 아들과 지인들이 다녀갔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집집마다 누가 살고 어떻게 지내는지 알기에 가능한 대화다. 봉투가 나오지 않은 집에 거는 전화는 그대로 안부 확인이 된다. 쓰레기를 걷다가 쓰러진 주민을 발견해 119에 연락한 일도 있었다.

최 씨는 이 마을의 첫 ‘모아짱', 쓰레기 수거 책임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한 시간가량 마을을 돌고, 이후에는 마을회관 앞 집하장에서 재활용품을 분류한다. 오전을 내줘야 하니 자기 농사는 새벽에 해둔다. 주민들은 모아짱이 집집마다 돌며 거둔 봉투가 회관 앞 집하장에 모여 분류되는 일 전체를 ‘모아'라고 부른다. 정식 이름은 ‘자원순환텃밭 모아'. 사람도, 쓰레기도, 이야기도 모으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차를 몰 수 있는 주민은 쓰레기를 집하장으로 직접 가져오고, 가져오기 어려운 집에는 모아짱이 찾아간다. ‘모아지기'로 불리는 주민들은 월·수·금요일 오전 집하장에 나와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주변을 정리한다. 분류가 끝난 쓰레기는 지방자치단체의 수거 체계로 넘어간다. 흩어져 있던 쓰레기를 집하장에 모으되, 지저분하게 방치되지 않도록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다.

■ 태우지 말라는 단속은 왔지만

물걸2리에서 쓰레기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2018년 무렵이다. 산불 예방을 위한 소각 단속이 강화되면서 태워 없애던 쓰레기가 곳곳에 쌓였다. 삼거리와 하천 위 다리 주변 등 쓰레기 봉투가 놓인 곳이 자연스레 배출 거점이 됐다. 지정된 배출장소가 아니다 보니 수거 인력이 바로 발견하기 어려웠고, 길 고양이와 까마귀가 봉투를 헤집었다. 어질러진 자리에는 지나가던 차량에서 버린 것들까지 더해졌다.

물론 지자체가 운영하는 청소차가 들어오지만, 집이 흩어져 있는 농촌 마을의 쓰레기를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집에서 배출장소까지 쓰레기를 옮기고, 모인 쓰레기가 불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을 마을이 풀어야 했다.

2021년 당시 이장이던 배상이(54)씨는 물걸2리 7개반의 반장·개발위원들, 마을 환경동아리 ‘삼삼은구’의 김인호·인혜경씨와 함께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관리하기로 했다. 지붕을 갖춘 상설 분리배출 시설인 클린하우스를 내촌면에 요청했지만, 설치에만 수천만 원이 필요해 면 예산으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면은 대안으로 분리수거함 6개를 지원했다. 수거함은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마을회관 앞에 놓기로 했다. 회관 앞쪽에 설치된 태양광 구조물은 집하장을 덮는 지붕 구실을 했다.

물걸2리 마을회관 앞에 자리한 주민 공동 수거 체계 ‘모아’의 집하장. 마을 곳곳에 쌓이던 쓰레기를 한곳에 모으기 위해 마련됐다. ‘마을의 얼굴’인 회관 앞에 쓰레기장을 두는 데 반대도 있었지만, 모아지기들이 정기적으로 쓰레기를 분류하고 주변을 쓸어 여름에도 날벌레가 꼬이지 않을 만큼 말끔하게 관리한다.

■ ‘마을 얼굴' 앞에 쓰레기라니

회관 앞에 집하장을 두는 데 반대도 있었다. 2017~19년 이장을 지내며 회관과 게이트볼장 건립을 추진했던 장영일(72)씨에게 회관은 ‘마을의 얼굴'이었다. 회관 앞에 동네 쓰레기를 모아두겠다는 계획이 달가울 리 없었다. “이 일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에요. 다른 쪽에 장소를 만들자는 거였지.” 관리 부실로 쓰레기 더미가 마을의 얼굴을 가릴 것을 우려한 것이다.

외지에서 온 활동가들이 마을 일에 나서는 데 대한 반감도 있었다. 인혜경씨는 자신들의 제안이 “주민들에게는 마을을 문제 있는 곳으로 규정하고, 그동안 만들어온 것을 무시하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삼삼은구는 ‘강원도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 공모 사업비로 2022년 9월부터 두 달간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마을총회에서 재활용품 판매 수입과 지출을 공개했다. 시범운영 뒤 주민 설문과 마을총회를 거쳐 ‘모아’를 계속 운영하기로 했다. 지금 모아지기 중 한명인 장영일씨는 총무를 자청하고 나설만큼 열심이다. “그전에는 집 앞에 쓰레기를 던져놓고 끝났지만, 지금은 마을회관에 가져와 서로 인사도 하고, 더 자주 만나 소통하니 좋죠.”

모아가 모은 것은 생활 쓰레기만이 아니다. 농촌에서는 농약병을 버릴 곳이 마땅치 않아 농가에서 오래 보관하거나 풀숲과 둑에 버리는 일이 흔했다. 모아는 집하장에 폐농약과 빈 농약병을 모을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밭과 둑, 풀숲에서 발견한 농약병까지 주워오기 시작했다. 판매수익은 모아짱의 기름값 등 운영비에 보탰다.

모아짱’ 최종화(왼쪽)씨가 쓰레기를 수거하며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씨는 차가 없거나 거동이 불편해 쓰레기를 집하장까지 옮기기 어려운 가구의 쓰레기를 수거한다. 집 앞에 봉투가 없으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고 수거 길에 마을 소식도 전한다.

■ 계속할 수 있는 마을의 일로

모아의 수거와 분류는 마을에 필요한 일을 주민들이 나눠 맡는 데서 출발했다. 특히 집하장은 쉬는 날이 없다. 누군가는 정해진 날마다 쓰레기를 거두고 품목별로 나눠야 한다. 모아가 시작된 2022년 9월부터 2년 반 동안 모아짱과 모아지기들은 거의 무보수로 수거와 분류 일을 해왔다. 삼삼은구와 주민들은 군청과 군의원, 노인복지관 등을 거듭 찾아가 이 일이 잠깐의 봉사가 아니라 마을에 계속 필요한 노동이라고 설득했다. 2025년 3월, 그렇게 이어온 활동이 노인 일자리로 인정받았다. 주민들이 나눠 하던 마을 일에 보상이 일부 더해진 것이다.

물걸2리 사례는 2023년 ‘홍천군 쓰레기 줄이기와 자원재활용 촉진에 관한 조례’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분리수거 체계에 필요한 장비·인력 확보와 경비 지원의 근거가 조례에 담긴 것이다. 하지만 조례에 따라 직접 지원된 예산은 아직 없다. 군의 판단에도 근거가 있다. 폐기물관리법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처리를 지자체 책무로 뒀고, 홍천군은 여기에 해마다 160억원가량을 쓴다. 이미 공식 수거 체계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주민 수거에 인건비를 추가 지원하기 어렵고, 다른 마을과의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는 게 군의 입장이다. 다만 군이 맡은 수거는 배출장소에 나온 쓰레기부터이고, 모아는 배출이 어려운 가구의 봉투를 집하장까지 직접 옮기고 분류·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군이 쓰레기를 가져가기 전까지 필요한 노동은 노인 일자리가 일부 맡지만, 보상이 주어지는 노인 일자리의 활동일과 기간이 정해져 있어 이를 넘어서는 일은 주민들의 몫이다. 정해진 활동일을 넘겨야 할 때나 겨울 공백기에는 모아지기들이 보수 없이 더 나오고, 여섯 개 반 주민도 순번을 정해 힘을 보탠다. 최종화씨도 개인 차량으로 한 달 스무날 마을을 돌며 차량 유지비 일부를 부담한다. 배상이씨는 “선의만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걸2리는 수거와 분류를 맡을 사람을 정해 노인 일자리와 주민 순번을 엮어, 봉사에만 기대지 않는 틀을 만들었다. 그 틀로 모아는 거동이 불편한 주민의 집과 배출장소 사이의 공백을 4년째 채워왔다. 이 노동을 마을과 행정이 어떻게 나눠 맡을지는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홍천/글·사진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변동팀장 ey.y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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