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해도 그만인 ‘시정권고’…프리랜서 예술인 구제 못 하는 ‘예술인권리보장위’

2024년 8월 서울 성북구 예술공간 ‘미인도’에서 열린 2024동네예술광부전. 협동조합고개엔마을은 당초 이 전시를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기획·준비했으나 전시 한달 전 재단이 일부 참여 작가 교체를 요청하면서 자체적으로 전시를 열었다. 협동조합고개엔마을 제공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인 권리 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권리보장위)가 불공정행위와 권리 침해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예술인들을 보호하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들을 구제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했으나, ‘시정권고’를 상대 기관이 무시해도 이를 강제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19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출범 이후 지난 6월까지 권리보장위에 접수된 신고는 913건에 달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에 근거해 구성된 권리보장위는 예술인의 권리 보장 및 성폭력 피해구제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문제는 권리보장위가 내린 처분의 실효성이다. 서울 성북구의 업사이클링 전시인 ‘2024 동네예술광부전’ 준비가 한창이던 2024년 5월, 작가 한관희(48)씨는 돌연 전시 참여 중단을 통보받았다. 성북문화재단이 한씨 등 참여 작가들이 전시에 여러 번 참여했다며 함께 전시를 기획하던 협동조합 고개엔마을에 작가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한씨는 “3월에 이미 섭외돼 6월 전시에 맞춰 준비하던 상황이었다”며 “처음부터 일정 횟수 이상 참여한 작가를 배제하겠다는 기준을 고지했다면 받아들였겠지만, 갑자기 ‘3번 이상은 안 된다’고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처지에 놓인 한씨 등은 이 사건을 신고했고, 권리보장위는 조사 끝에 지난해 9월 재단의 행위를 예술인권리보장법(불공정행위의 금지)에 위반되는 행위로 보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라”고 권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재단은 “불공정행위라 판단하지 않는다”며 시정 권고를 ‘미수락’했고, 후속 조처는 없었다. 권리보장위 처분 가운데 ‘시정권고’의 경우 기관이 이를 거부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 등의 이행 장치를 두고 있지만, ‘시정권고’는 이행을 담보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씨 신고 사건에서 재단은 권리보장위에 “향후 임직원들에게 의사결정 절차를 준수한 것을 전달”하겠다고만 밝혔다. 권리보장위가 ‘시정권고’를 내린 사례는 이번 건을 포함해 10건이다.

결정 내용을 예술인에게 제때 알리지 않아도 되는 허술한 절차도 문제다. 현행법상 시정권고 결정에 대해서는 신고인에게 통지할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씨는 권리보장위의 시정권고를 재단이 수락하지 않은 사실을 9개월 만인 지난달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채원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이사장은 “문체부에 여러 차례 문의한 끝에 올해 초 구두로 결과를 들었고 결정문도 요청 끝에 겨우 받아냈다”며 “결과 통지가 어려운 일도 아닌데 지연되는 바람에 대응할 시기마저 놓쳤다”고 비판했다.

문체부는 미비점을 보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성북문화재단 건의 경우 예외적으로 (결과 통보가) 지연된 것 같다”며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이후 발견된 미비점을 반영해 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개정안에는 당사자에게 결정 내용을 서면으로 통지하는 규정도 추가돼 있다”고 밝혔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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