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꾹 닫은 워시...월가, 연준 침묵에 '워시GPT'까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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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워시 연준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케빈 워시 의장 취임 이후 통화정책에 대한 힌트를 줄이면서 월가가 인공지능(AI)을 동원해 연준의 속내를 읽는 데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워시 의장의 과거 발언과 문서를 분석하는 전용 챗봇까지 등장하는 등 연준의 소통 축소가 월가의 투자 분석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18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미국 자산운용사 F/m 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워시 의장의 통화정책 판단 방식을 분석하는 AI 도구 '워시GPT'(WarshGPT)를 공개했습니다. 워시 의장의 연설과 인터뷰, 기고문 등 약 1800건의 문서와 발언록을 분석해 그가 경제와 통화정책 현안을 어떻게 바라볼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입니다.

워시GPT의 등장은 워시 의장이 취임 이후 연준의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정책 안내)를 줄이고 시장과의 소통 방식을 대폭 간소화한 데 따른 것입니다. 연준 인사들의 발언과 표현을 해석해 금리 향방을 예측해온 투자자들로서는 통화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단서가 이전보다 크게 줄어든 셈입니다.

실제 워시 의장 체제에서 처음 발표된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은 약 130개 단어로 작성됐습니다. 이전 성명들이 300개가 넘는 단어로 구성됐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짧아졌습니다. 워시 의장은 당시 성명이 이전보다 "짧고 단순해졌다"며 향후 정책 경로에 관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의도적으로 제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통화정책 결정 기자회견에서도 정책 관련 언급을 최소화했습니다. UBS에 따르면 당시 워시 의장이 정책과 직접 관련된 내용에 할애한 문장은 전체의 5%에 그쳤습니다. 제롬 파월 전 의장 재임 당시 기자회견의 평균 비중인 27%보다 크게 낮은 수준입니다.

파월 전 의장이 기자회견과 연설을 통해 경제 상황에 대한 판단과 향후 정책 방향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왔다면, 워시 의장은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에서는 워시 체제의 연준이 과거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시절처럼 의중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중앙은행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그린스펀 전 의장 재임 당시에는 짧은 인사말 하나에도 시장이 출렁인다는 농담이 나왔습니다. 그가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이 평소보다 두꺼우면 금리 변경을 뒷받침할 자료가 많이 담긴 것이라는 이른바 '브리프케이스 지표'까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워시 체제에서 비슷한 정보 공백이 나타나자 월가는 사람의 직관과 경험에 의존했던 '연준 해독'에 AI를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워시 의장이 현재 내놓는 발언만으로는 정책 방향을 판단하기 어려워지자 그의 과거 발언과 정책 이력, 경제·정치적 배경을 한꺼번에 분석해 사고방식과 정책 성향을 추적하려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모리스 F/m 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그동안 연준 특유의 화법인 '페드스피크'를 해독하며 꽤 괜찮은 사업을 해왔다"며 "그런데 워시 의장은 이제 우리에게 말을 아끼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워시GPT는 앤트로픽의 생성형 AI 모델 '클로드'를 기반으로 약 2주 만에 개발됐습니다. 이름은 오픈AI의 챗GPT에서 따왔지만 실제 개발에는 경쟁사 모델이 활용됐습니다. 개발 비용은 1000달러 미만으로, 공개 전에는 전직 연준 관계자와 금융 뉴스레터 작성자 등이 성능을 시험했습니다.

다만 워시GPT가 워시 의장을 대신해 답변하거나 앞으로의 기준금리 결정을 직접 예측하는 것은 아닙니다. 워시 의장의 과거 발언에 경제·정치적 배경을 결합해 특정 현안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있는지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명확한 금리 전망을 제시하기보다 워시 의장의 정책 판단 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보조 도구인 셈입니다.

다른 대형 금융회사들도 AI와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워시 체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UBS는 고객들이 워시 의장의 발언과 연준의 정책 기조를 분석할 수 있는 대화형 대시보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발언에 담긴 매파·비둘기파 성향을 수치화해 투자자의 주관적 해석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UBS는 워시 의장의 첫 통화정책 회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 정책 관련 언급이 전반적으로 강한 매파 성향을 나타냈다고 평가했습니다. 노동시장과 성장세에 대한 긍정적인 판단과 물가에 대한 경계가 함께 반영됐다는 분석입니다.

JP모건자산운용도 연준이 향후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 등 주요 자료의 공개를 줄일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켈리 JP모건자산운용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연준이 점도표를 폐지할 경우 금리를 결정하는 FOMC 위원들의 연설을 더욱 면밀히 분석해 향후 표결 방향을 가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워시GPT를 비롯한 AI 분석 도구의 활용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입니다. 워시 의장이 공개 발언과 정책 안내를 계속 줄인다면 투자회사들은 개별 발언뿐 아니라 과거 정책 이력과 경제지표, 다른 연준 인사들의 발언까지 결합해 연준의 정책 방향을 추정하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시장에서는 워시 의장의 발언이 줄어들 경우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등 다른 FOMC 위원들의 발언이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직 뉴욕연방준비은행 관계자인 스티브 프리드먼 맥케이실즈 선임 거시경제학자는 월러 이사가 전체 위원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풍향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문제는 시장이 AI 분석과 개별 연준 인사들의 발언에 더욱 의존할수록 같은 정보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연준이 향후 정책 방향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상 밖의 금리 결정이나 발언이 나올 경우 시장이 이를 한꺼번에 가격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워시 체제의 소통 축소가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투자자들이 정책 방향을 미리 가늠하기 어려워지면서 금리 결정이나 연준 인사들의 공개 발언을 전후해 채권금리와 주가, 환율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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