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다고?…지난해 무단횡단 사망자 234명

10명 중 3명 "최근 무단횡단했다"…횡단보도에서도 사고 빈번

사망자 중 70% 이상이 노령 보행자…보행자 과실 크지만 운전자도 전방주시 책임

"무단횡단 어디로 가시나요?"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최근 온라인에서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논란이 됐다.

보행자용 신호등이 빨간불인데 한 여성이 횡단보도에 갑자기 뛰어들면서 차량과 정면충돌하는 장면이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기면서다.

블랙박스 화면 속 도로 중앙 정류장에는 버스가 서 있어 이 여성이 버스를 타기 위해 무단횡단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온라인에서는 이 사고를 두고 무단횡단이 초래한 결과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저런 상황에서도 차량 운전자에 책임이 따르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도 통계를 살펴보면 일반적인 인식보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단횡단 실태와 사고 때 책임 소재 등을 살펴봤다.

홍대입구 역 부근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순간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
[보배드림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길 건너면 무조건 무단횡단?

흔히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건너면 모두 무단횡단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만, 도로교통법상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아도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도로교통법 제10조(도로의 횡단)는 '보행자는 횡단보도, 지하도, 육교나 그 밖의 도로 횡단 시설이 설치된 도로에서는 그곳으로 횡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법에는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가장 짧은 거리로 횡단해야 한다'는 규정도 같이 있다.

도로에 따라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횡단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가령 시골이나 한적한 지역 도로에 횡단보도가 띄엄띄엄 있다면 도로를 가로질러도 무단횡단으로 보지 않는다.

경찰청 관계자는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지 아니한 도로'의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 "주위를 둘러봤는데 횡단보도나 육교 등이 시야에 없다면 도로로 건넜다고 해서 무단횡단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횡단보도나 지하도, 육교 등의 도로 횡단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지체장애인이라면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도로 횡단이 가능하다.

횡단보도를 건넜다고 해도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무단횡단에 해당한다.

도로교통법 제5조는 '도로를 통행하는 보행자는 교통안전시설이 표시하는 신호 또는 지시와 경찰공무원 등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돼 있어서다.

보행자가 정해진 장소 이외의 도로에서 무단으로 횡단하면 도로교통법 제157조에 따라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진다.

2025년 무단횡단 금지 준수율은 73.4%
[한국교통안전공단 '2025년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국민 10명 중 3명 "최근 횡단보도 아닌 데서 길 건너본 적 있다"

홍대입구 사고를 포함한 무단횡단 사고 블랙박스 영상을 두고 상당수는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도로를 건너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적지 않은 국민이 일상적으로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올해 1월 발표한 '2025년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행행태 의식수준 조사에서 '무단횡단 금지 준수율'은 73.4%로 나타났다.

2만4천273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최근 30일간 주변에 횡단보도가 있는데도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도로를 건너간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다.

공단이 매년 하는 이 조사에서 무단횡단 금지 준수율은 2023~2025년 3년간 연속 70%대에 머물고 있다.

또 공단이 2021년 1월 전국의 보행자 교통사고 다발 구간 3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행 실태조사에선 보행자 1만5천361명 중 18.2%(2천801명)가 해당 구간에서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도로를 건넌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 10명 중 2명이 무단횡단을 택했다는 의미다.

무단횡단을 하는 주된 이유는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아서"나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답이 주를 이뤘다.

공단이 2019년 7천6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보행자 횡단 안전도 및 통행우선권 설문조사'에 따르면 당시 최근 일주일간 무단횡단을 한 경험이 있다는 보행자는 32.3%였다.

이들은 무단횡단 이유로 ▲ 도로 폭이 좁아서 충분히 건널 수 있고(38.6%) ▲ 주변에 횡단보도가 없으며(24.2%) ▲ 무단횡단을 해도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아서(19.8%) ▲ 급한 일 때문에(14.6%) 순으로 답했다.

무단횡단 이유 조사 결과
[한국교통안전공단 '보행자 횡단 안전도 및 통행 우선권 설문조사'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무단횡단은 주요한 교통사고 사망원인…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1명은 무단횡단 탓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아' 건넌다고 하지만 무단횡단은 사고 발생 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1명은 무단횡단이 원인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해 '횡단보도 외 횡단 중 보행자 교통사고' 5천484건이 발생해 총 234명이 숨지고, 5천378명이 다쳤다.

이는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2천549명)의 9.1%에 해당한다.

앞서 2020년에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10.9%(337명), 2021년에는 9.2%(271명), 2022년에는 9.6%(265명), 2023년에는 9.9%(254명), 2024년에는 9.6%(244명)가 각각 무단횡단으로 사망했다.

무단횡단은 횡단보도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TAAS의 '보행사상자의 사고 시 상태별 통계'를 보면 지난해 횡단보도 내 사고 사망자는 250명, 부상자는 1만1천322명이었다.

전체 '횡단 중' 사고 사망자가 484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은 이번에 논란이 된 무단횡단 속 영상처럼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발생해 목숨을 잃었다는 의미다.

이런 횡단보도 사고의 상당수는 보행자가 보행신호를 위반한 경우라고 전문가는 지적했다.

김원기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사고조사연구원은 "보행신호가 아닌데 성급하게 건너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버스종합환승센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횡단보도 사고 원인은 다양하나 도로 중앙에 설치된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학술지 '국토계획'에 수록된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 주변 보행자 교통사고 요인 분석: 서울시 TAAS(2014~2016) 자료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2014년 1월~2017년 4월 서울시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 근처에서 발생한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685명 중 14%(98명)를 차지했다.

특히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가로변 정류소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건수보다 5.4배 높았다.

2014년 한국ITS학회논문지에 수록된 '중앙버스전용차로 분리형 횡단보도 무단횡단 억제시설 효과 평가'도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 앞 횡단보도에서 정류소에 진입하는 버스를 이용하기 위한 이용자들의 무리한 횡단이 유발된다고 지적했다.

해당 연구는 또 서울 숙대입구 중앙버스정류소 횡단보도에서 횡단보도자 1만9천여명의 자료를 수집한 결과, 횡단보도로 진입해 횡단보도로 진출하고, 보행 녹색시간 내에 횡단을 완료하는 '정상' 보행 행태는 57.8%였다고 분석했다.

김원기 도로교통공단 연구원은 도로 중앙에 버스 정류소가 생기면서 예전에 비해 도로 횡단거리가 좁아진 것도 무단횡단이 늘어난 원인으로 추정했다.

"무단횡단금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사고 시 보행자 과실 크지만 운전자도 전방주시 등 책임

무단횡단 사고가 발생하면 보행자의 과실이 크지만, 운전자에도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도로교통법상 운전자에게 도로 상황을 살피고 전방을 주시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는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했다고 해도 도로교통법상 운전자에게 전방 주시 의무가 있어서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고 장소도 과실 여부를 따질 때 영향을 미친다.

경찰청의 한 교통 담당자는 "(사건 발생 장소가) 자동차 전용도로라면 운전자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일반 도로라면 (운전자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운전자의 '예견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도 과실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법무법인 엘마인드의 양선순 대표변호사는 "제한속도보다 20㎞ 이상 과속했다거나 해서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이어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운전자가 사고 당시 보행자가 나타날지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 예견했다면 충돌을 회피할 수 있는지와 같은 '예견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홍대입구역 인근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암 투병 중인 자녀의 수술 후 합병증으로 병원 응급실로 이동 중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이런 부분이 참작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만으로 과실 비율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양 변호사는 말했다.

양 변호사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에 따라 과실 유무가 결정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형사 책임과 별개로 민사에선 보행자 책임이 더 크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김원기 도로교통공단 연구원은 "운전자에게 보행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형사 측면에선 운전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보행자가 보행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넌 것이 확인되는 만큼 민사에선 보행자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단횡단 근절 퍼포먼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무단횡단 사고 사망자 3분의 2 이상 고령자…"가까운 거리라고 해선 안돼"

전문가들은 무단횡단 근절을 위해선 보행자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단횡단 사고 사망자 중 고령층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고령자의 주의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TASS의 작년 통계를 보면 지난해 무단횡단으로 숨진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는 166명으로, 전체 무단횡단 사망자(234명) 중 70%가 넘는다. 부상자도 2천74명이었다.

'2025년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횡단 신호를 지키지 않는 이들 중 고령자 비율은 78.4%(관측 기준)로 집계됐다.

걸음이 느리거나 반응이 느린 고령 보행자가 최단 거리로 가려거나 더 빨리 가려고 무단횡단을 하다가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관련 기관들은 분석했다.

교통안전공단이 2020년 발표한 연령별 보행자 횡단 특성 분석 실험 결과를 보면 만 60세 미만은 횡단보도로부터 평균 76.7m 거리에 차량이 접근했을 때 횡단을 포기했으나 만 60세 이상은 64.7m까지 접근했을 때 횡단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교통공단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가까운 거리라고 무단횡단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조금 멀더라도 횡단보도와 보행로를 이용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령자 보행안전 수칙
[한국교통안전공단 블로그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lucid@yna.co.kr

<<연합뉴스 팩트체크부는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factcheck@yna.co.kr)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조회 489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