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주식은 효성중공업이다. 1주를 사려면 40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이렇게 1주당 100만원이 넘는 주식을 ‘황제주’라고 하는데 우리 주식시장에는 11개 정도 있다.
효성중공업의 주가는 1년 전만 해도 50만원대였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8배 넘게 올라 이제는 꽤 무거운 주식이 됐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심리적 진입장벽이 높다보니 하루 거래량이 6만 주 내외에 불과할 정도여서 시장에선 액면분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삼성전자처럼 액면분할 목소리 커
2018년 삼성전자 주가는 250만원대였는데 액면가 5천원의 주식을 100원으로 분할하면서 1주당 주가가 5만원대가 됐고, 주식 수는 50배 증가했다. 효성중공업도 삼성전자처럼 ‘50:1’의 액면분할을 한다면 주가는 8만원대로 내려오고 주식 수는 50배 많아진 4억6천만 주 이상이 된다. 2018년 반도체 호황으로 주가가 크게 오르던 시기에 삼성전자 주식이 너무 무거워 거래가 잘 안됐는데 이후 거래가 활발해졌고 결국 기업가치는 더 오르게 되었다.
물론 이론적으로 액면분할 전과 후의 기업가치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액면분할이 주가를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액면분할 뒤 가벼워진 주식에 대한 매수세가 강해지면서 이전보다 주가가 더 오르리라는 기대가 있다. 따라서 경영진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이렇게 1년 만에 기업가치가 8배 넘게 커진 데는 효성중공업이 생산하는 전력기기가 큰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는 해링턴플레이스 같은 아파트 브랜드가 더 익숙할 수 있지만 효성중공업 매출액의 70%, 영업이익의 99%는 변압기·차단기 같은 전력기기에서 발생한다.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삼성전자나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효성중공업 같은 전력기기 기업들도 크게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 이유도 있지만 정보기술(IT)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전력 인프라의 확충과 업그레이드 수요가 쉼 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2024년 말 효성중공업의 전력기기 관련 수주 잔고가 10조7천억원대였는데 2025년 말엔 43% 증가한 15조3천억원이 됐다. 전력기기 연간 매출액이 4조1천억원이니 3년치 이상의 일감을 쌓아둔 셈이다.
국내 최초로 765킬로볼트(㎸) 변압기를 개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효성중공업의 핵심제품은 초고압 변압기다. 변압기는 말 그대로 전압을 바꿔주는 장치인데, 발전소에서 송전할 때 변압기를 이용해 전압을 높여 전류를 줄임으로써 송전 손실을 최소화하고 소비자에게는 다시 전압을 낮춰 적정 전압을 공급하는 구실을 한다. 미국에 765㎸ 변압기 생산 공장을 보유해 변압기 최대 수요처인 미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하고 있다.
경쟁사인 에이치디(HD)현대일렉트릭도 765㎸ 변압기를 국내에서 생산 중이고 향후 미국 공장에서도 제조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이 제품을 국내 두 개 기업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히타치에너지와 미쓰비시, 독일의 지멘스에너지와 미국의 지이(GE)버노바 등도 경쟁사로 분류된다.
송전받은 전력을 데이터센터 내부에 분배하려면 배전 변압기와 수배전반 등의 설비가 필요하다. 이런 배전 및 전력 솔루션은 엘에스(LS)일렉트릭이 강점을 가지며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도 일부 영역을 수행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전력기기 관련 2025년 매출액은 4조1천억원이고,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은 각각 4조원, 4조9천억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세 기업의 시가총액은 모두 40조원대로 실적 대비 주가가 꽤 높은 편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예상 ‘1주당 순이익’(EPS) 대비 주가가 6배에서 형성되는 데 비해, 이들 3사는 50배가 넘을 정도로 주가수익비율(PER)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효성중공업의 사업보고서에 수록된 산업의 성장성 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산업(히트펌프, 전기로), 건물(냉난방 설비), 수송(전기자동차) 등 다양한 부문에서 에너지의 전기화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전력 계통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설비 투자 또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당사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세계 전력 수요는 2050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럽 및 북미 등 선진국의 노후 그리드 개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자립 및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친환경, 고효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따른 전력 소비로 전력 수요 증가세를 견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큰 폭으로 늘었지만 몇 년 내에 대규모 투자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돼 벌고 있는 이익 대비 주가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력기기 분야는 최소 20년 동안은 지속 성장하리라는 전망에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반도체 기업과 똑같은 슈퍼사이클을 누리며 최고의 실적과 주가를 찍고 있듯이, 전력기기 밸류체인에 속한 기업들도 마찬가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액은 감소… 긴 호흡으로 보라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당장 엄청난 실적을 뽑아내고 있지만 전력기기 쪽은 실적 증가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매출액이 전 분기 대비 각각 43%와 60%나 늘었지만 이들 전력기기 3사는 오히려 각각 22%, 11%, 10%씩 감소했다. 수주는 늘고 있지만 반도체처럼 대규모 공장을 갖춰 빨리 생산해내는 구조가 아니다. 당장의 실적은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성장성에 대한 전망은 유효하니 긴 호흡으로 이 업계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박동흠 공인회계사·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
박동흠은 많은 사람에게 기업 숫자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쓰고 강의하는 일을 주로 한다. 뉴스나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숫자를 찾아 분석하면 숨은 뜻을 헤아리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생긴다. 그 힘을 소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