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해가 아닌 학살을 막아라’ 연속 기고 ④
뎡야핑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해초, 동현, 승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떠났던 항해자들이 돌아왔다. 가자에 닿지 못한 채로. 공해 상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에 납치·구타당해 고막이 파열되고, 근육 세포가 파괴되고,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 봉쇄된 바다를 뚫고 올 항해자들을 기다리며 굶주린 가자 주민들이 준비한 축제는 구호선단 활동가 428명의 즉각적인 구금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로 바뀌었다.
각국으로 돌아온 활동가들은 일관되게 피해자이자 강제된 목격자로서 구타와 성폭행, 고문을 증언한다. 이미 전세계가 이스라엘 국가안보부 장관이 자랑스레 올린 학대 영상을 보았다. 활동가들은 한결같이 강조한다. 카메라 앞에서 국제 활동가들을 이렇게 폭행할진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 식민 감옥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무슨 짓을 하고 있겠느냐고.
실제로 2023년 10월7일 이스라엘이 가자 주민 집단학살을 시작한 이래 이스라엘 교도소는 또 하나의 집단학살 터로 기능했다. 이스라엘은 1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 대부분을 재판도 기소도 없이 가둔 채 최소 100명을 살해했다. 이스라엘 남성, 여성 군인 할 것 없이 성폭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증언과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저명한 외과의사 아드난 알 부르쉬 박사는 고문치사 당했고, 아부 사피야 박사(카말 아드완 병원장)은 국제앰네스티 등의 구명 운동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고문당하며 몸무게 절반을 잃었다. 이스라엘 국회는 최근 팔레스타인인에게만 상소 없이 신속한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킨 후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가를 처형할 수 있는 특별 재판소 설치법도 통과시켰다. 애초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전체가 이스라엘에 반격을 가했던 이유가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독립운동가와 민간인을 포로 교환을 통해 석방시킨다는 것이었을 만큼 이스라엘 식민 감옥은 이미 팔레스타인 민족 말살의 현장이었다.
항해자들은 왜 가자지구로 향했는가. 이스라엘이 가자 집단학살과 봉쇄를 본격화한 지 2개월 후였던 2023년 12월, 이미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 인구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고 경고했고, 지난해 8월에는 유엔 통합식량안보단계(IPC) 최고 단계인 ‘기근’이 선포됐다. 그사이 국제사회와 미국이 손 놓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구호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구호 트럭의 육상 반입을 막는 이스라엘의 불법 행위를 제지할 수 있는데도 그대로 놔둔 채로, 다른 방법만 시도했을 뿐이다. 미국은 부유식 임시 항구를 만들어 이를 통해서만 구호품을 반입시키겠다고 했지만 2억3천만달러(약 3400억원)를 들인 항구는 떠내려갔다. 요르단과 유럽 국가들이 비행기를 띄워 공중 투하한 구호품들은 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비행 한번에 트럭 1대 분량에 불과했고, 피란민들은 바다에 떨어진 구호품을 건지러 헤엄쳐 가다가 익사했다. 600여개 구호품 배급소와 구호 식당을 모두 폐쇄한 후 이스라엘과 미국이 만든 ‘가자 인도주의 재단’(GHF)은 구호품 배급소를 4곳으로 줄여 운영했다. 가자 주민과 미국 보안업체 용병들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비유한 이 배급소는 이스라엘 점령군이 약 5개월간 3천명에 가까운 굶주린 피란민을 살해하는 덫으로 기능했다.
한국을 비롯해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집단학살이라는 인류가 정한 가장 중대한 반인도적 범죄를 멈출 법적 의무가 있다. 집단학살 정책으로 이스라엘이 체계적으로 도입한 집단 기아를 막을 국제법상 책임이 있다. 정부들이 최소한의 책임마저 해태하는데 시민들이 왜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가. 이미 최소 7만3천명이 살해됐고, 알려진 것만 최소 460여명이 굶어 죽었다.
앞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①가자 앞바다에서 한국석유공사 철수 ②해초 활동가 여권 효력 복구 ③유엔에서 이스라엘 규탄 ④가자지구 집단학살 현장에 복무한 한국인 9명 처벌 ⑤주한 이스라엘 대사 추방 ⑥국산 굴착기 등 전쟁범죄에 사용되는 전략 물자 수출 중단 ⑦국제형사재판소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에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 선언 ⑧국제사법재판소의 이스라엘 집단학살 재판 제소국에 합류 ⑨포괄적 무기 금수 조치 등을 담은 유엔 총회 결의안 이행 등 이재명 정부가 당장 집행할 수 있는 9가지 행동을 재차 전달했다.
항해가 아니라 봉쇄를 막아라. 가자지구에 막대한 구호품을 쏟아부으라. 도의적인 지원 얘기가 아니다. 이제라도 국제법상 의무를 이행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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