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그리워 나왔다"…어버이날에도 무료급식소엔 긴 줄

밥퍼·탑골공원 가보니 "어르신들, 식사보다 안부 묻는 걸 더 기다려"

탑골공원 무료급식소
[촬영 조현영]

(서울=연합뉴스) 한지은 조현영 정지수 기자 = "카네이션을 얼마 만에 받아보는 건지. 이런 날 특히 애들이 보고 싶어요…."

어버이날인 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 앞마당. 무료 급식을 기다리던 노인들의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이 하나씩 달리자, 주름진 얼굴이 청년처럼 환히 밝아졌다.

봉사자들이 "어르신 무병장수하세요"라고 외치며 큰절하자 곳곳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중랑구에서 왔다는 김모(67)씨는 "혼자 살아서 사람이 많은 곳에 오니 좋다"며 "카네이션까지 달아주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버이날 밥퍼나눔운동본부 무료급식
[촬영 정지수]

이날 재단은 무의탁·차상위계층 노인을 대상으로 '밥퍼 어버이날 효도잔치 한마당'을 열고 카네이션 달기와 특별배식, 선물 나눔, 노래자랑 등을 진행했다.

준비된 배식은 700인분이었지만,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최 측이 마련한 의자는 모두 찼다. 행사장 밖으로도 배식을 기다리는 긴 줄이 이어졌다.

어버이날 특별배식 메뉴로는 흑미 콩밥과 미역국, 불고기, 김치, 수박이 준비됐다.

봉사자들이 "건강하세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어르신들은 연신 "고맙다"며 웃어 보였다.

이모(73)씨는 "자식들이 오늘 못 온다고 해서 공연이나 보러 왔다"며 "서둘러 왔는데도 자리가 없을 뻔했다"고 말했다.

기다림 이어지는 탑골공원
(서울=연합뉴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같은 시각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도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노인들은 신문지와 종이상자를 바닥에 깔고 앉거나 간이의자에 기대 순서를 기다렸다.

봄 햇살 아래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거나 홀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모(92)씨는 "매일 공원에 와 점심을 먹고 간다"며 "보통 혼자 있는데 오늘은 어버이날 공연도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오후에는 자식들이 오기로 했다"며 웃어 보였다.

벤치에 앉아있던 서모(78)씨는 "자식들과 교류가 많지 않아 어버이날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며 "서운하지도 않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탑골공원 무료급식소
[촬영 조현영]

무료 급식 줄 주변에는 거리 생활을 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부는 캐리어 위에 백팩과 짐가방을 겹겹이 올려 끌고 다녔고, 두꺼운 점퍼 차림으로 바닥에 앉아 배식 시간을 기다리는 노인도 보였다.

캐리어를 손에 쥔 한 노인에게 말을 건네자 그는 짧게 손사래를 친 뒤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행사장 안팎의 온기와는 별개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봉사자들은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에 오히려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전했다.

밥퍼 행사에 참여한 한 봉사자는 "오늘 같은 날은 일손이 부족할 것 같아 봉사에 나왔다"며 "식사도 중요하지만, 누군가 말 걸어주고 안부 묻는 걸 더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무료 급식소를 관리하는 자광명 보살은 "어버이날이나 명절처럼 가족이 생각나는 날에는 무료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이 더 많아지는 편"이라며 "사람이 그리워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wri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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