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국 육군 차세대 헬기 개발사인 벨(Bell)과 손을 잡으면서 8조원 규모의 한국군 차세대 고속 중형기동헬기(HSMUH) 사업 수주 경쟁이 본격화됐다.
KAI가 글로벌 수준의 첨단 기술을 앞세워 반격에 나섬에 따라, 최근 주요 헬기 사업을 선점하며 상승세를 굳히고 있는 대한항공과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4일 방위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벨 본사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KAI는 실무 추진단을 구성해 한국군의 요구 성능에 맞춘 기체 최적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이는 최근 헬기 성능개량 사업 등을 독식하며 주도권을 쥔 대한항공에 맞서 시장 판도를 뒤집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KAI는 이번 협약을 기점으로 국내 생산 라인 구축과 핵심 기술 이전 범위를 확정하기 위한 세부 협상을 본격화하고, 총 8조원이 투입되는 차세대 고속 중형기동헬기 사업 공고 전까지 기술적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릴 계획이다.
비행기처럼 프로펠러 방향을 바꿔 고속 비행이 가능한 벨의 최신형 기체 MV-75(샤이엔 II)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기체는 기존 헬기보다 속도와 항속 거리는 월등히 앞서지만 복잡한 구조에 따른 높은 유지비와 미국 측의 핵심 기술 이전 문제는 해결 과제로 꼽힌다.
이에 KAI는 벨과 공동으로 한국형 정비 지원 체계를 조기에 구축해 운영 유지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한편, 경쟁 우위를 점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고속 중형기동헬기 사업은 우리 군의 노후한 블랙호크(UH-60) 헬기를 교체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기체 도입과 개발 비용을 합쳐 약 8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2031년 본격적인 개발 착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30년을 전후로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군의 요구 성능(ROC)이 구체화되는 향후 1~2년 동안 자사의 기술 사양을 사업 규격에 반영시키기 위한 ‘물밑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KAI는 미군과 같은 기종을 쓴다는 점과 뛰어난 성능을 강조하며 해당 사업을 거머쥐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대한항공은 안정적인 운영과 검증된 경험을 무기로 주도권 수성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4월 약 1조원 규모의 ‘블랙호크 성능개량 사업’에서 KAI를 제치고 사업권을 따내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과거 블랙호크를 국내에서 직접 라이선스 생산했던 경험과 정비 노하우를 바탕으로 승기를 잡았다.

대한항공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신기종 도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익숙한 운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진화형 신규 기체’를 제안 중이다.
생소한 기술을 도입해 리스크를 키우기보다, 검증된 기술 기반의 신형 헬기를 선택하는 것이 국방 예산과 부대 운영 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논리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블랙호크 사업뿐만 아니라 전자전기, 항공통제기 등 대형 항공 방산 사업을 잇달아 수주하며 연간 수주액 3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그간 수익성 정체기를 겪었던 항공우주사업본부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실질적인 사업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을 얻고 있다.
연이은 수주 성공과 재무 구조 개선으로 확보한 자신감이 차세대 사업 수주전에서도 KAI에 맞서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 중이라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앞으로의 경쟁은 KAI의 첨단 성능과 대한항공의 운용 효율성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 될 전망이다.
KAI가 벨로부터 핵심 기술을 얼마나 실효성 있게 이전받느냐가 사업 성패의 관건인 가운데, 대한항공 역시 블랙호크의 원제작사 미국 시코르스키(Sikorsky Aircraft)와 고속 비행 기술 도입을 검토하며 맞불을 놓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양측 모두 단순한 기체 공급을 넘어 무인기와 협동 작전이 가능한 미래형 전술 시스템 구축으로 경쟁의 초점을 넓혀가는 흐름이다.
KAI가 대표 국산 헬기 수리온과 소형무장헬기(LAH)를 통해 입증한 무인기 연동 기술과 벨의 첨단 소프트웨어 시너지를 강조한다면, 대한항공은 국내 최고 수준의 무인기 라인업과 최근 대형 사업에서 증명한 시스템 통합 역량으로 맞서고 있다.
국내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KAI가 벨의 첨단 기술을 조기에 국산화해 새로운 기술 주권을 세우려 한다면, 대한항공은 블랙호크 사업으로 검증된 운용 안정성을 차세대 사업에서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KAI가 벨과 손잡고 초고속 성능을 먼저 제안하며 기선제압에 나선 만큼, 대한항공 역시 시코르스키 등과의 파트너십을 구체화하며 군의 눈높이를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오기 위한 행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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