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소방 국가직화](종합)
"신분은 국가직, 현장엔 여전한 격차"…소방 국가직화 6년의 역설

#2001년 3월 4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 좁은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는 진입하지 못했다. 주민 구조에 나섰던 소방관 6명은 건물이 무너지면서 순직했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지역별 인력과 처우 격차, 보호장비 노후화 등 현장 안전을 둘러싼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직 전환 이후 전국 단위 재난 대응체계가 강화되고 소방 인력도 확충됐지만, 소방관들의 근무환경까지 균등하게 개선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19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은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전환됐다. 지역별 소방서비스 격차를 줄이고 대형 재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 경기 부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공무원이 순직하면서 국가직 전환의 성과와 남은 과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가직 전환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전국 단위 소방력 동원체계 강화다. 대형 재난 발생 시 소방청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의 소방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확대됐다. 지역별로 분산됐던 소방력을 국가 차원에서 활용하는 체계가 강화된 것이다.
소방 인력도 늘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올해 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소방공무원은 2017년 4만8042명에서 2024년 6만6802명으로 증가했다.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도 같은 기간 1091명에서 766명으로 줄었다. 다만 인력 확충은 국가직 전환 이전부터 추진된 정책이다.
문제는 전체 인력이 늘었어도 지역별 여건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2024년 기준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는 서울이 1255명인 반면 전남은 396명으로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지역별 인구밀도와 관할 면적, 출동 수요 등이 다른 만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실제 현장 수요에 맞는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관의 안전과 직결되는 보호장비 관리도 과제로 꼽힌다. 소방청의 '2026 소방장비 통계집'에 따르면 전국 개인 보호장비 60만5936개 가운데 38.9%가 사용기한을 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용기한 초과가 곧 현장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의 생명을 보호하는 장비인 만큼 적기 교체와 관리가 중요하다.
지역별 근무 여건을 뒷받침하는 예산에도 차이가 있다. 지난해 소방공무원 1인당 피복비는 부산과 제주가 각각 25만원인 반면 울산은 70만원으로 2.8배 차이가 났다. 위탁교육비도 부산은 4만1000원, 충북은 42만8000원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같은 국가직 소방공무원이라도 근무 지역에 따라 지원 예산이 다르게 책정되는 셈이다.
부천 공장 화재를 진압하다 중상을 입은 소방공무원이 순직한 사고는 현장 안전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웠다. 이번 사고와 인력·장비 부족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의 안전관리체계와 장비 운용 여건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존 장비의 관리뿐 아니라 소방관이 직접 진입하기 어려운 위험 현장에 대응할 첨단 장비 확충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시·도지사들이 소방 업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관심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소방관이 진입하기 어려운 고열의 화재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대형 드론 등의 첨단 장비 확충에 대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름만 국가직' 소방, 여전히 자치사무…"정부 예산 지원 어려워"
소방 예산 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은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예산을 감당해야 하는 데 있다. 소방사무가 지역의 자치사무로 분류되면서다. 지자체장이 소방공무원의 임용권을 갖는 등 이름만 국가직인 소방의 기형적인 구조를 해결해야 중앙정부 지원 근거가 생긴단 지적이 나온다.
소방공무원은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전환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 어떤 지역에서도 동일한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의 재난 대응 책임을 강화하겠단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 과정에서 지자체가 인사·지휘 권한 등 상당 부분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면서 완전한 국가직 전환은 이뤄지지 못했다.
지방자치법은 '지역의 화재예방·경계·진압·조사 및 구조·구급'을 지자체 사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시·도지사는 소방공무원에 대한 임용권 일부를 갖는다. 지방 소방본부도 시·도지사 직속으로 재난시 소방활동에 대한 지휘·감독권한도 행사한다. 국가직이면서 지방직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지방재정법은 자치사무에 필요한 경비를 지자체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직임에도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에 제한이 생긴 이유다.
대신 중앙정부는 국가직 전환 과정에서 소방공무원 2만명을 증원하고 인건비를 지원하기 위해 20%였던 소방안전교부세율을 45%로 높였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월 발간한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의 취지는 달성되고 있는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이후 2019년 전체 소방 예산 중 국비 비중이 7% 수준이었으나 2021년 14.9%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감소하다가 2025년엔 10.7%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6년 예산안 기준으론 6조5550억원의 전체 소방 인건비 중 소방안전교부세로 지원되는 인건비는 5496억원으로 8.3%에 불과했다.
국비 비중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건비는 계속해서 증가하지만 소방안전교부세는 궐련형 담배 소비가 줄면서 재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서다. 소방안전교부세는 담배분 개별소비세의 일정 비율(45%)을 재원으로 한다.
문제는 늘어나는 소방 예산 대부분을 지방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도 소방예산 편성 현황을 살펴보면 최종예산 기준 △2015년 4조434억원 △2018년 5조742억원으로 5조원을 넘어선 뒤 △2021년 6조6893억원 △2024년 8조951억원 △2025년 8조4790억원 △2026년(예산안 기준) 8조5967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2015년과 비교하면 2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역대 정부는 안전 예산 강화를 외쳤다. 하지만 정작 소방이 지방사무라는 한계에 부딪혀 직접적인 지원이 쉽지 않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늘리려면 인사권과 소방 지휘 권한을 가진 지자체장과 협의를 거쳐 법을 개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 관계자는 "지방자치법에 소방이 지방사무로 규정돼 있어 지방재정법에 따라 지자체가 재정을 감당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을 늘리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소방안전교부세를 늘리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 신분은 '국가직', 재정은 '지방 몫'…민주당, 법 손질 나선다
더불어민주당이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지방자치단체에 집중된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관련 법령 정비와 국비 지원 확대 방안 검토에 나섰다. 인건비와 필수 장비, 복지 예산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지역별 소방 인력·장비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소방공무원의 신분만 국가직으로 일원화한 채 예산과 현장 운영의 부담은 지방에 남겨둔 왜곡된 구조를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책위원회에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과 안전 지원을 위한 제도 정비를 주문했다. 정책위는 기존 법안과 관련 법령을 재점검하고, 국가의 재정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입법·예산 대책을 검토할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인 국비 부담 비율이나 법 개정안의 내용, 추진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우선 검토 대상은 소방예산의 국가·지방 간 분담 구조다. 소방공무원은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소방 예산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지방비로 충당된다. 국회 집계에 따르면 전국 소방예산은 2020년 5조9729억원에서 지난해 8조1478억원으로 늘었지만, 국비 지원 비율은 같은 기간 14.6%에서 10.7%로 오히려 낮아졌다. 소방 수요와 재정 여건이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부담만으로 전국의 소방서비스 수준을 균등하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인건비와 필수 장비, 복지에 대한 국비 지원 확대를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률에 국가의 재정 지원 책임을 명확히 하거나 관련 재원의 안정적인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제도 개선의 방향이 될 수 있다. 다만 국가 부담을 실제로 확대하려면 관련 법률의 개정뿐 아니라 중장기 재정 소요를 산정하고 정부 예산에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방에 대한 지원을 늘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관건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소방 재정 문제는 임기응변식이 아니라 당 차원에서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세심하게 살피면서 차분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안전교부세를 비롯한 지방 재정 지원 체계도 과제로 꼽힌다. 소방예산의 지방 부담이 큰 상황에서 교부세까지 줄면 장비 교체와 시설 확충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대응력 강화도 입법·예산 논의의 한 축이다. 민주당은 소방공무원의 신체·정신건강 지원체계를 보완하고, 정기적인 심리검사부터 전문 상담·치료, 회복과 현장 복귀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위험직무 수행에 따른 희생을 인정하는 기준과 포상 제도 개선, 관련 법안의 처리도 추진 과제로 꼽힌다. 이재정 의원이 발의한 위험직무순직 인정 관련 법안과 곽상언 의원의 정신건강 지원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지방정부 차원의 장비·인력 보강도 긴요하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소방안전교부세 미집행 내역을 면밀히 살피고 보호장비와 노후 장비를 신속히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추가로 필요한 장비 6대도 2027년도 예산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