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동안 로커로 ‘나 혼자 산다’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올해 초,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다. 19살 때부터 31년 동안 무대에 서 왔기 때문에, 신나는 로큰롤을 연주하는 무대 위 내 모습은 활력이 넘치고 어떨 땐 살짝 미친놈 같기도 하지만 아직도 예능 방송 같은 데 나가게 되면 쑥스럽다. 뭔가 나의 속살을 들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무의식중에 있었던 것도 같다. 더군다나 나의 일상은 특별한 게 없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정말 부스스한 머리에 눈곱 낀 얼굴이 그대로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평소 루틴 그대로 했다. 지금도 눈뜨자마자 환기하고, 이불을 널고, 물고기 밥을 주고 음악을 듣고, 폼롤러 스트레칭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방송에서도 그대로였다. 기안84는 로커 집이라 하니 담배꽁초가 쌓여있고 오후 늦게 일어날 줄 알았다며, “이 형은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라고 말해서 스튜디오에 웃음을 자아냈다.

얼마 전 전기압력밥솥을 구매했다. 외부활동이 많고, 1인 가구이다 보니 식재료들이 남을까 봐 아깝기도 하고, 배달도 워낙 잘되니 그간 직접 밥을 지어 먹을 필요가 없었다. 혼자 살면서 집안일은 어느 정도 마스터했지만, 요리까지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았다. 사실 그건 핑계고, 요리까지 잘해버리면 나중에 결혼해서 “색시야, 국이 너무 짜다.” 이 짓거리 할까 봐 안 했다. 사실 이건 농담이고.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압력밥솥 사용법을 익히고 테스트를 마친 뒤, 내친김에 된장찌개까지 도전했다. 불 앞에서 요리하고, 머리를 굴리며 바쁘게 움직이고,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들로 나를 위한 한 끼를 만드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먹는 게 나’라는 말, 정말 깊게 공감되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들. 힐링이었다. 요리하는 시간이 명상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삶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내가 만든 한 끼를 먹는다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인생 2막이 시작된 것 같다.

언젠가부터 항상 쫓기듯 살아왔다. 아마도 소셜미디어가 유행했을 때부터일까?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인생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항상 팽이처럼 채찍질하며 굴러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나를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에는 검은 나의 그림자뿐이었다.

사람들이 나보고 변했다고 한다. 예전보다 조금 유해진 것 같다는 얘기도 한다. 예전 사진들을 보니 눈꼬리가 꽤 사납긴 하더라. 한 친구가 나보고 예전처럼 반항적인 이미지로 돌아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 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답다’는 것은 죽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력에 반항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중력에 순응하며 사는 것은 삶이더라. 쉬는 날 침대에 누워 중력과 친해지니 그렇게 좋더라. 예술의 날은 날카롭게 연마하되, 삶의 날은 부드럽게 마모되자.

요즘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뒤집어 생각하면 모두가 다 특별하다. 과연 선과 악이라는 게 존재하나 싶기도 하다. 어디서 봤는데, 모순을 끌어안고도 즐겁게 사는 것이 어른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소셜미디어의 멋진 게시물 때문에 삶의 기준이 높아져서인지 왠지 불안하고 초조했던 나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선과 악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그렇게 심각할 필요 없다고. 가볍게 살아도 된다고. 조금 실수해도 된다고. 밤에 라면 먹고 조금 부어도 된다고. 욕 좀 먹어도 괜찮다고. 조금 억울해도 괜찮다고. 잘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큰 무대에 서지 않아도 괜찮다고. 잊혀도 괜찮다고.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산책을 하고 등산을 가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밝은 햇살을 마음껏 맞고, 울고 싶을 땐 울고, 뛰고 싶을 땐 마음껏 뛰고, 웃고 싶을 땐 마음껏 웃고, 사랑하고 싶을 땐 그냥 해버리자고.

가을이 나를 바삭하게 만든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오전에 글을 쓰면 마음이 살균되는 기분이다. 그렇게 삶을 받아들이며 오늘도 나 혼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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