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AI기업 회사채 ‘고래싸움’ 여파…“역사적으로 치솟는” 주요국 장기 금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의 장기 금리가 이례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폭발적인 인공지능(AI) 설비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회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하면서 국채와 ‘자본 경쟁’을 벌이는 게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4일 “미국, 유럽, 일본의 장기 금리가 역사적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금리 상승이 기업의 차입 부담과 개인의 주택담보대출 상환액 증가로 이어져 경기 하방 압력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 이들 주요국의 장기금리는 이달 들어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대표적 장기금리 지표인 각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를 보면, 미국은 1일 장중 한때 5.34%까지 치솟았다. 2002년 5.4%대를 기록한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럽에서도 금리 상승이 두드러진다. 같은 날 영국은 5.51%로 2007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프랑스 역시 지난 2일 장중 4.994%를 기록하며 24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라섰다.

일본은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10년물 국채 금리가 3.1% 안팎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나라와 견줘 절대 수치가 2%포인트가량 낮지만 장기간 ‘제로(0) 금리’를 유지했던 일본에선 1996년 이후 30년 만에 최고 수준 금리다. 1년 전과 견주면 무려 1.45%포인트가량 상승한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미국, 유럽보다 향후 국채 금리가 더 빠르게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을 둘러싼 중동 사태로 국제 에너지값 불안이 지속하는 데다, 이들 주요국의 재정 악화 우려가 확산하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책임있는 적극 재정’을 앞세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정부 등이 공격적인 확장 재정을 강조하면서 국채 금리 상승(국채 값 하락)을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국채 금리를 흔드는 전통적 요인 외에도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폭발적 수요가 주요국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에 따르면,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마존,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5개의 채권 발행 규모가 올 1∼7월 사이 1320억달러(17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지난해 1년간 발행했던 930억달러(125조원)보다 40%가량 더 많은 금액이다. 이들을 포함한 주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인공지능 개발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데이터센터 등 설비투자에 필요한 비용을 앞다퉈 회사채로 조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채는 국채보다 안전성이 낮은 대신 더 높은 금리를 준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신뢰도를 지닌 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채권을 판매할 경우, 투자금 유치를 놓고 국채와 회사채의 경쟁 체제가 이뤄지게 된다. 국채와 회사채 공급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금리)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국채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최근 인공지능 붐이 관련 기업들이 포진한 주식시장을 넘어 국채 시장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뱅가드는 지난달 ‘채권 금리 상승의 의미’ 보고서에서 “올해 기업들이 막대한 인공지능 관련 지출(투자)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량을 크게 늘렸다”며 “주요국이 국채를 늘리는 가운데 회사채 발행량이 함께 증가하면서 장기 금리 상승 압력이 더해지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업과 확장재정에 돈이 필요한 국가들의 ‘자금 쟁탈전’이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시도 도모아키 일본 노무라증권 선임전략가는 요미우리신문에 “거대 정보기술 기업 등은 수익 창출 능력이 뛰어나 투자자에게는 리스크가 낮다”며 “이들 회사채가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국채와 경쟁하면서 투자 자금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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